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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는 아랍인들 서구 지배 전략을 흔들다
깨어나는 아랍인들 서구 지배 전략을 흔들다
  • 알랭 그레슈
  • 승인 2011.03.11 18:3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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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écial] 재스민 혁명, 연출과 캐스팅

몇 주간 계속된 파업과 시위 물결이 이 무슬림 대국을 집어삼켰다. 경제위기와 사회혼란, 대통령 일가가 자행한 국부 약탈, 무자비한 철권통치는 이내 미국 지역전략의 교두보 역할을 하던 이 나라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미 정부는 결국 오랜 맹방의 손을 놓아버렸다. 미국 국무장관이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위해 물러나라'며 독재자에게 퇴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원문 보기>>

지난 2월 이집트의 상황일까? 아니다. 1998년 5월 인도네시아 얘기다. 그러니까 여기서 독재자에게 사임을 요구한 건 힐러리 클린턴이 아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다. 1965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으로 권좌에 오른 수하르토는 50만 명의 공산당원 또는 공산당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잔인하게 학살했지만, 종국에는 정치 무대에서 퇴장하는 처지가 된다. 베를린장벽이 붕괴(1989년)되고 소비에트연방이 몰락(1991년)하면서, 인도네시아는 냉전의 전초기지로서의 매력을 상실한다. 미국은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쪽을 택해 어떻게든 당시 사태를 미국의 국익에 보탬이 되는 쪽으로 이끌려 했다. 때마침 클린턴 대통령도 국제사회에 좀더 개방된 미국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바라던 차였다. 결국 미국의 선택은 지능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후에도 계속 미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물론 이슬람회의기구(OIC) 정식 회원국으로 가끔 이란 핵 문제 등에서 독자적 행보를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인도네시아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 먼저 어떤 독재체제도 결코 영원불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설령 그것이 무슬림 인구대국일지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한 나라의 내부적 변화가 대외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변화의 정도는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사실상 이집트는 인도네시아가 아니고, 중동은 동남아시아가 아니기에.

인도네시아처럼 ‘관리’할 수 있을까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의 외교계에서는 내부적으로 ‘아랍 민심’(Arab Street) 따위에는 콧방귀도 안 뀌는 분위기였다. 대체 이 수십억 명의 개개인을 안중에 둘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기껏해야 이슬람주의나 반서구주의 구호를 외치는 게 전부인 이들이다. 반면 그동안 서구는 아랍 지도자들과는 사이좋게 지내왔다. 더욱이 이들은 충분히 유익한 질서를 자국에 강제할 능력이 있다. 아랍의 왕과 대통령은 우리의 지도자는 물론 지식인까지 동양 특유의 극진함을 다해 환대해왔다. 1995∼2001년 개인적 사유로 모로코에 머물던 프랑스 장관만 400여 명에 달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점령지를 확대해가는 오늘날, 아랍의 독재자들이야말로 ‘중동 평화협상’에 균형추 역할을 해줄 사람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단 몇 주 만에 아랍민은 수동적이며 절대 민주주의를 옹립할 능력이 안 된다던 기존의 신화는 산산조각이 났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알제리·예멘·리비아·바레인, 심지어 아랍국도 아닌 이란에 이르기까지 중동 전역이 민주화 바람에 휩쓸렸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사회정책이나 개발정책이 아니다. 지역전략이 걸려 있다.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우리는 운명의 주체가 된 민중과 나라의 열망을 고려하지 않고는 중동의 지정학을 분석할 수 없게 됐다.

이집트 혁명, 서구의 순망치한

그렇다면 이집트의 상황은 어떤가? 벌써 미래 대외정책의 밑그림을 그려본다는 게 시기상조처럼 느껴지지만, 어쨌든 이번 사태로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가장 충실한 우방을 잃게 됐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집트는 미국의 맹방으로 지난 30년간 이스라엘과 함께 미 중동 전략의 중심추 역할을 해왔다. 이라크전쟁(1990~91)에도 함께 참전했다. 최근 몇 년간 호스니 무바라크는 ‘이란의 위협’에 대항한 십자군 전쟁의 선봉에 서왔다. 또 중동에서 ‘평화 프로세스’라는 환상을 지켜나가는 데 일조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협상 재개를 압박하는가 하면,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전혀 평화협상을 체결할 의사가 없어 보이는 이스라엘 지도부와도 샤름엘셰이크에서 정기적으로 회동해왔다. 무바라크는 가자지구 봉쇄에도 함께 참여했다. 또 ‘하마스’와 ‘파타’ 사이의 모든 화해 기류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또 다른 ‘온건’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던 화해 협상마저 실패로 돌아가도록 만들었다(2007년 5월 메카 협정). 지난겨울 시위 현장에는 히브리어로 쓴 팻말을 높이 치켜든 시위자가 등장했다. 무바라크가 이스라엘 지도층의 언어를 이해하는 유일한 자라는 의미였다.

잠정적으로 권력을 이양한 이집트 최고군사위원회는 앞으로도 이집트가 국제적 약속(1978년 체결된 캠프 데이비드 협정과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체결된 평화협정)을 잘 이행할 것이니 걱정 말라며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를 안심시켰다. 물론 이집트 국민이 다시 전시상황으로 돌아가자고 요구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 기존 협정이 중동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화에 큰 걸림돌이 된다고 여긴다. 외교위원회(CFR·뉴욕 소재)의 스티븐 쿡이 지적한 것처럼 많은 이집트인이 보기에 이 협정은, 이집트의 권력은 완전히 제한하는 반면, 이스라엘과 미국에는 아무런 장애 없이 지역 이익을 수호하게 한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전쟁을 치를 위험이 없어지면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수십만 명의 이스라엘인으로 채울 수 있었고, 레바논을 두 번이나 침공(1982년과 2006년)했으며,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했고, 이라크와 시리아를 폭격했다.(1)

이집트 국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왔다. 2006년 여름 발생한 레바논-이스라엘 전쟁 때에도 정부는 헤즈볼라의 무모한 행위를 맹비난했지만, 카이로의 상점들은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초상화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다원주의와 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이집트 시위자들은 현재 국민의 민주화운동을 저지하느라 매일같이 강경 일로로 치닫고 있는 이란에 그다지 호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란은 아랍국도 아닐뿐더러, 시아파가 다수인 나라다. 역사적으로도 이집트와는 경쟁국으로 인식돼왔다. 그럼에도 이란이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독단적인 행보에 무릎을 꿇지 않는 태도만큼은 높이 평가한다.

미국 영향력 악화에 겁먹는 지배자들

앞으로 더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서면 이집트 정부는 가자지구 문제나 대이스라엘 정책에서 과거보다 여론을 더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 이스라엘이나 여러 아랍국과 반이란 연합전선(비공식적)을 형성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더욱 신중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앞으로 이집트가 얼마나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느냐는 지난 몇 년간 ‘자유화’ 바람에 휩쓸린 이집트 경제가 얼마나 건실하느냐에 달려 있다. 여전히 이집트는 미국의 군사 및 식량 지원과 유럽연합의 금융 지원에 의존하는 처지이며, 경제도 약화돼 있다. 혹자는 앞으로 이집트가 터키처럼 독자적 외교 노선을 펼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터키가 비교적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경제가 활성화된 덕분이었다. 터키의 국민총생산(GNP) 규모는 (동일 인구로 환산할 경우) 이집트보다 무려 3배나 크다.

팔레스타인인들, 민주화 투쟁 나설까

비교적 ‘온건’하다고 알려진 여러 아랍국, 그 가운데서도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집트 변혁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압둘라 국왕은 미국 대통령에게 무바라크를 지지해줄 것을 부탁했다. 아랍 지도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중동 내에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반대 전선을 강화하고 이란 제재를 이끌어내는 데 강력한 능력을 보여줬다. 그것만으로는 이라크전 실패(올 연말 미국은 이라크 철군을 앞두고 있다)를 만회하기에 역부족이다. 게다가 현재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정부가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는 데도 힘을 쓰지 못했다.

지난 1월 사드 하리리 정권이 실각하고, 무바라크 대통령이 버림받으면서 이미 예멘에서 요르단까지 민주화 물결이 확산되는 모습에 겁먹은 아랍 ‘온건국’의 시름은 나날이 깊어져만 가고 있다. 걸프 지역 국가의 젊은이들도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일어난 일에 전혀 무감하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 일간지 <알와탄>은 2월 16일자 기사에서 걸프국 젊은이들의 열망에 귀기울여야 한다며 정부를 향해 경고 섞인 호소를 했다. “젊은이들은 개발사업에 관심을 갖고, 공사가 조속히 진행되고 있는지 진척 상황을 지켜보며, 계획의 효율성과 비용 등을 따져 과연 개발의 수혜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부동산 개발을 둘러싸고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에 횡행하는 부정부패를 꼬집는 말이었다. 하지만 민주화 열풍이 일어나기 전부터 사우디아라비아는 일찌감치 시리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중동 지역에서 좀더 자주적인 노선으로 선회했다. 지난 1월에는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이란 신임 외무장관의 유화 제스처에 긍정적으로 화답하기까지 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무바라크가 퇴진하면서 충실한 우방을 잃게 됐다. 하마스와의 화해에 적대적이던 무바라크는 그동안 이스라엘과의 협상 정책을 지원해왔다. 앞으로는 이런 변화를 모두 고려해야 할 것이다. 2월 중순 유엔 안보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제출한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 규탄 결의안을 심의하는 동안, 오바마 대통령은 마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에게 전화를 걸어 결의안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은 미국 대통령의 강한 압박에 전혀 굴하지 않고 철회 요구를 거절했다. ‘큰형님’ 국가 미국에 대한 대외정책을 더욱 강경한 기조로 전환했다. 이처럼 교착상태가 계속될 경우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젊은이들도 가자지구의 젊은이들처럼 자유와 존엄성을 향한 열망을 표출하게 될 것인가? 인권과 평등을 향한 투쟁에 나서게 될 것인가? 자신들의 지도자와 이스라엘의 점령에 동시에 대항하는 평화적 거리시위를 벌일 것인가? <예루살렘 포스트>가 보도하고 있듯이,(2) 그런 상황을 우려한 이스라엘 군도 현재 신속대응 군을 조직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현 사태에 대해 미국의 다른 우방 아랍국보다 더 깊은 우려를 느끼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도 무바라크에 대한 확고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국 싱크탱크 ‘신미국재단’(NAF)의 영향력 있는 회원 데니엘 레비가 지적하듯, 이런 태도는 이스라엘이 ‘중동의 유일한 민주국가’가 될 것임을 거듭 언급하는 행위와도 일맥상통한다. 이는 결코 이스라엘이 독재국가에 둘러싸여 고립될 것을 우려한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에는 ‘유일자’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3) 이스라엘에서는 매번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주변의 친서구 성향의 독재정권을 용인하는 쪽을 택해왔다. 아랍 국민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느끼는 연대의식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황하는 이스라엘, 전쟁 불사?

현재 이스라엘은 중동 사회에 불고 있는 변화의 물결에 잔뜩 당황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이슬람주의자의 역할을 과장하거나, 지금의 상황을 1979년 이란 혁명과 비교한다. 또 세계가 아직 ‘이란의 위협’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며 허풍을 떨거나, 북부 전선 지대를 방문한 에후드 바라크 국방장관의 예처럼 장병들에게 앞으로 레바논을 재침공할지 모른다고 예고한다.(4)

만일 ‘서구가 패배’한다면 시리아-이란이라는 축,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승리하는 것일까? 물론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결정적 약점이 있다. 하마스의 영향권은 가자지구에 국한됐고, 라피크 하리리 총리 암살 사건을 조사해온 ‘레바논 특별재판소’가 최근 헤즈볼라 고위 간부를 배후로 지목하면서 나스랄라 조직의 입지도 상당히 약화됐다. 한편 이집트 혁명에 환영의 뜻을 밝혔던 이란은 정작 자국에서 비슷한 요구의 시위가 발생하자 무차별 진압을 자행하며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반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두 가지 이점을 누리고 있다. 먼저 시리아 국민은 소요사태가 종교분쟁을 동반하며 이라크식 정정 불안을 야기할 것을 두려워한다. 또 시리아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강경노선을 펼치면서 국민 사이에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자유화 정책을 실시하는 시리아는 현재 급격한 인구 증가에 직면해 있으며, 심각한 경제적·사회적 문제로 시름하고 있다. 더욱이 시리아 젊은이들도 다른 아랍국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열망하고 있다.

우리는 처음에 인도네시아의 사례를 예로 들면서, 미국 정부가 독재정권의 몰락에 대응해나가는 과정을 살펴봤다. 그런데 오늘날 중동은 결정적으로 과거의 인도네시아와는 다른 점이 있다. 바로 팔레스타인이라는 복병이 남아 있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팔레스타인 문제는 시위대들에게 부차적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이집트 민주화운동 중에 시위 조직자들은 의도적으로 반미나 반이스라엘 구호를 금지했다. 정권이라는 하나의 적에게만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이런 바람을 잘 이해하고 따라줬다. 하지만 무바라크가 퇴진하고 2월 18일 카이로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을 때, 시위대 사이에서 또다시 예루살렘 해방을 외치는 목소리가 대대적으로 높아졌다.

아랍 지도자들이 충실한 우방 역할을 다해준 덕분에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은 큰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물론 ‘아랍 민심’을 다소 잃기는 했지만, 뭐 대수롭게 여기는 문제도 아니지 않은가!)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이제 끝났다. 지난해 3월 이미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 사령관이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장군은 이런 진단을 내렸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아랍의 분노는 우리가 이 지역 정부나 국민과 깊고 강한 관계를 맺어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아랍 온건국가 정권의 정당성도 약화하고 있다.”(5) 그렇다면 앞으로 이런 지정학적인 변화가 미 정부에 중대한 결단을 내리게끔 만들 것인가? 미국은 그런 결단을 원하는가? 결단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미·EU, ‘아랍 민심’을 읽어야

결단의 문제가 제기되기는 유럽연합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벤 알리나 무바라크와 척척 손발을 맞춰온 탓에 유럽연합도 궁지에 몰렸다. 그동안 유럽연합은 독재정권과 거리를 두는 데 실패했으며, 어떤 평화도 원치 않는 것이 분명한 이스라엘 정부와 수많은 협정을 남발해왔다. 또 신자유주의 정책을 열렬히 추앙하며 지중해 남부 국가를 빈곤과 부패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다. 과연 유럽연합은 앞으로 ‘아랍 민심’을 보듬는 쪽으로 나아갈 것인가? 어쨌든 기적적이게도 현재 아랍의 시위대 속에는 수염을 기른 광신도나 부르카를 착용한 여인들은 보이지 않는 데 말이다. 또한 레바논 지식인 조지 콤이 요구하는 것처럼, 앞으로 선진국 시민사회는 ‘아랍 민심’을 귀감으로 삼아 “가공할 위력의 신자유주의 과두체제를 상대로 좀더 강력한 투쟁”을 펼칠 것인가? “사실 신자유주의 과두체제는 유럽 경제를 빈곤하게 만들고, 충분한 고용 기회를 창출하지 못하며, 매년 더 많은 유럽인을 불안정한 삶으로 내몰고 있다. 반면 이런 부정적 변화의 수혜는 소수 ‘경영자’ 계층에게 톡톡히 돌아가고 있다. 이들은 매년 더 많은 국부를 연봉으로 취하며 배를 불리고 있다.”(6)

대등한 동반자 요구하는 아랍 민중

몇 년 만에 세계는 다극주의 체제로 변화했다. 브라질에서 중국, 인도에서 남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대국이 결코 서구에 반대하거나 서구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와 동등한 입장에서 국익을 수호하며 자국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한 예로 미국의 동맹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터키는 이란 핵이나 팔레스타인 문제를 놓고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며 지역 내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다.(7) 마그레브(리비아·튀니지·알제리·모로코 등 아프리카 북서부)나 중동 지역도 ‘다극주의’라는 세계적 흐름에 동참하려는 모습이다. 전직 CIA 요원으로 <정치적 이슬람의 미래>를 저술한 그레이엄 풀러의 분석에 따르면, “이 지역 민중이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삶과 운명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략) 단기적 차원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은 쓰디쓴 약을 감내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한발 뒤로 물러나 각 사회에 자율권을 줘야 하고, 그동안 근시안적 시각에서 국익을 위한다며 중동 지역의 민중을 어린애 취급 해오던 오랜 관행을 중단해야 한다.”(8)

1979년 이란 혁명 때 시위자들은 “동도 서도 안 된다”고 외치며, 미국과도 혹은 소련과도 대립하고 싶지 않은 바람을 표현했다. 어쩌면 오늘날 다극화된 세계에서 자주성과 주권을 요구하는 아랍 세계 전역의 시위자들은 이렇게 외칠지 모른다. “서구와 함께해서도, 서구와 대항해서도 안 된다”고. 이들은 앞으로 전세계, 특히 팔레스타인에서 얼마나 정의의 원칙과 국제법을 잘 수호하는지에 따라 서구를 평가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자국의 정부가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반서구주의를 이용하는 것을 더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글•알랭 그레슈 Alain Gresh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스티븐 쿡, ‘The U.S.-Egyptian breakup’, <포린 어페어스> 인터넷판, 2011년 2월 2일,
www.foreignaffairs.com.
(2) 야코브 카츠, ‘IDF prepares over fears of Egypt-style W.Bank demos’, <예루살렘 포스트>, 2011년 2월 18일.
(3) 대니얼 레비, ‘Israel’s option after Mubarak’, 2011년 2월 13일, http://english.aljazeera.net.
(4) <하레츠>, 텔아비브, 2011년 2월 15일.
(5) 미 하원에서 한 증언, 2010년 3월 16일.
(6) 조지 콤, ‘아랍 스트리트가 선진국에 귀감이 될 때’, 2011년 2월 11일, www.lemonde.fr.
(8) 웬디 크리스티아나센, ‘유연한 무슬림, 터키의 대담한 외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2월.
(9) 그레이엄 풀러, ‘Revolution in Egypt’, <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보스턴, 2011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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