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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혁명을 도둑맞지 않으려면…
튀니지, 혁명을 도둑맞지 않으려면…
  • 아크람 벨카이드
  • 승인 2011.03.1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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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écial] 재스민 혁명, 연출과 캐스팅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정권이 붕괴되고 몇 주가 지난 지금 튀니지인은 그들에게 던져진 과제를 고심하고 있다. 치안 병력의 부재와 몰락한 독재자 지지자들의 훼방으로 그들의 승리가 도둑맞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는 끝내 자유를 얻었지만 아직 아무것도 확실치 않습니다. 여전히 과거의 악마가 튀니지를 붙잡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튀니지 북부 교외 라마르샤의 어느 작은 카페 테라스에 앉은 젊은 기자는 튀니지 시민들의 의식을 이렇게 일갈한다. 지역 언론과 더불어 사회 각계에서는 독재체제의 종식, 벤 알리와 측근 체포, 전 여당인 입헌민주연합(RCD) 해체, 자유롭고 투명한 선거 약속에 대한 논의가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 아랍 세계의 많은 국가가 튀니지 혁명의 뒤를 잇고 있지만, 튀니지에서는 그 신명이 사그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상적 고충 외에 가장 우려되는 것은 치안 문제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도시의 대로와 가장 외진 마을에까지 상주하던 치안군이 사라져버렸다. 이들의 부재는 튀니지를 놀라게 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사람들을 공격하고 재산을 침탈하면서 공포를 퍼뜨리는 전 여당의 사병조직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돌고, 길거리에서는 비이성이 확산된다. 수많은 학교가 불타고 튀니지 중서부 마누바 지역 사립학교에 재직 중이던 폴란드 신부를 살해하는 등의 사건들은 옛 체제의 하수인들이 복수를 감행하고 있음을 확인시키며 소문을 사실로 만든다.

▲ <거리의 장면들>-2007, 모하메드 아블라
옛 체제 하수인들의 물리적 공격

튀니지의 한 출판인은 “전 독재정권의 지지자들은 우리가 다시 경찰국가를 아쉬워하도록 온갖 궁리를 하고 있다. 벤 알리 정권 몰락 이후 그들이 취한 국가 초토화 전략이다”라고 분노한다. 그는 이런 상황이 민간 사회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중산층이 어쩔 수 없이 군의 편으로 돌아서도록 만들고, 민주화 이행에 차질을 빚게 할 우려가 있다고 본다. 아마르 군 참모총장은 시위대에 대한 발포 명령을 거부해 벤 알리의 사병조직에 의한 내전을 막은 뒤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마르 장군은 자신의 군대는 민중의 선택을 존중하고 권력을 탈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수차례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대다수 튀니지인들은 이웃 알제리를 파탄낸 것과 같은 유혈 내전을 견딜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따라서 일종의 권위주의적 권력의 회귀에 안도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경찰이 국가 치안을 포기하고 있는 상황은 이해하기 어렵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 또 다른 면에서는 과도정부의 명확한 지시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 관저 경호 같은 일부 업무는 중단되거나 해체됐다. 그러나 군대에 준하는 벤 알리 사병조직의 전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되지 않았다. 수많은 정치인과 단체들은 과도정부가 치안조직을 다시 꼼꼼히 점검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그것의 최우선 목적은 과거 정권의 내무부에서 채용한 약 40만 명의 병력(스파이는 제외)이 벤 알리 사병대로 편입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모두 이라크의 선례를 기억하고 있다. 2003년 이라크에서는 이라크 군대와 바스당의 와해로 수천 명의 군인이 반란 세력에 가담했다. 벤 알리에 대한 부분 사면을 옹호하는 여론이 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몬세프 마르주키 같은 많은 정치인들과 이슬람주의자 라테드 가누치는 민심을 파악해 국가 미래의 평화와 안정에 최대 위협이 되는 벤 알리와 그의 부인 레일라 트라벨시를 체포해 심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경찰국가 그립도록 공포 자극

튀니지인들의 두 번째 걱정은 지정학적 문제로, 이웃한 두 개의 중요 국가와 관련돼 있다. 우선 ‘자마히리야’의 지도자(카다피 리비아 대통령)는 민중의 선택을 존중하기보다는 자기와 같은 독재자를 지지했다. 이 이웃 나라의 무례하고 갑작스러운 결정(예전에 수천 명의 이민자를 갑자기 축출한 일)에 익숙한 튀니지인들은 카다피가 튀니지를 불안정하게 만들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확실치는 않지만 트라벨시 부인이 리비아에 정착해 튀니지를 다시 탈환할 기반을 마련하려 한다는 정보에 튀니지는 울상이었다. 그러나 2월 14일 리비아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면서 상황은 변했다.

다른 이웃 국가는 문제가 또 다르다. 알제리 정권의 침묵은 모두가 우려하는 문제다. 벤 알리 정권이 붕괴되기까지 알제리의 공식 언론이나 권력 측근 언론은 튀니지 사태에 대해 축소 보도로 일관했다. 체제 변화에 대한 간결한 언급 말고는, 아메드 우야히아 정부나 부테플리카 대통령 누구도 튀니지 사태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알제리는 지난 2월 11일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하야 이후 튀니지 부르기바 대로의 환호에 찬 시가행진에서 알제리의 국기가 흩날린 것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이렇듯 냉정한 침묵과 함께 튀니지인들은 <네스마 TV>나 <한니발 TV> 같은 방송을 통해 반체제 인사들의 의견이 자유롭게 표현될 때, 알제리 체제가 어떻게 대응할지 우려하고 있다.

이웃 나라들은 좋은 이웃 될까

튀니지의 정치인들은 이같은 치안 및 지역적 도전 말고도 사회질서를 안정화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경제 호황이라고 알려진 것들은 조작의 결과였음이 매일같이 드러나고 있다. 독재자가 축출되자마자 엄청난 사회적 요구가 빗발쳤다. 그동안 튀니지는 아랍 국가 중에서는 드물게 주거난을 겪지 않는 나라로 알려졌지만, 실제 인구의 상당수는 집 한 칸 얻기 어려운 상태다. 지난 2월 중순 이후로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도피 중이거나 구금된 전 정권 고위 관계자 소유의 택지에 마구잡이식 건설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이런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 되자 내무부 장관은 국민에게 ‘무단 점거’를 중지하고 재산권을 존중하도록 요구했다. 중앙은행의 한 간부에 따르면, 당장 시급한 주거 수요를 충족하려면 앞으로 11만 채의 공공 주택을 건설해야 한다. 그러나 이 수치도 부모 집에서 살 수밖에 없는 젊은 실업자들의 요구는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급여 및 노동 조건과 관련해서도 요구가 쏟아진다. 지난 2월 1∼15일에 100건은 족히 넘는 노동쟁의가 발생했다. 여기에는 튀지니항공처럼 노동쟁의의 예외라고 여겼던 기업들도 포함돼 있다.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요구는 옛 체제와 깊숙이 결탁된 경영진 철수, 임금 상승과 노동조건 개선 등으로 수렴된다. 과도정부는 이것이 변화를 위한 우선 과제 중 하나임을 인정하면서도 매번 인내와 책임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운신의 폭이 좁다. 노동자 투쟁은 경제모델 전체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같다. 특히 수출 위주의 기업 전체와 관련돼 있다. 유럽의 조건에 비해 20분의 1밖에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있는 직물, 자동차 설비, 전기부품, 심지어 항공업계의 노동자는 그들의 요구를 알리고 즉각적인 임금 인상을 쟁취하기로 결심했다. 유럽 기업들의 지사나 행정 하청기업도 마찬가지 상황으로, 특히 은행, 회계 및 실사 회사들까지 포함돼 있다.

노동계 움직임이 주요 변수

튀니지 노동총연맹(UGTT)은 “지금까지 수출기업들은 하나같이 의무가 면제된 토양에서 성장해왔다. 느슨한 노사 관련 규율 때문에 노조 설립은 어려웠다”고 설명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벤 알리 체제의 경찰은 이 업계들에서 일체의 노조운동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아왔다. 현재 노동총연맹은 이런 기업들과 면세 지역에 대한 법률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 노동총연맹은 이제 변화를 주도하는 구심 세력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과도정부는 아직 이렇다 할 중대 결정을 내리지 않은 채 노동총연맹에 자문을 요청했다. 그 자문 내용에 새로운 정부 관료와 외교 관료 리스트가 있었을지 모른다. 이와 관련해 튀니지 상공회(UTICA)는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경영진이 과거 독재권력과 광범위하게 결탁해 노조조직을 통제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벤 알리의 몰락은 지중해 남쪽에서 가장 조용한 노조를 내세우며 외국 기업을 유인해왔던 튀니지라는 국가 이미지를 깰 수도 있다.

글•아크람 벨카이드 Akram Belkaïd  

번역•박지현  sophile@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국제단체 남극보호연합 한국지부 담당관. 주요 역서로 <녹색희망> 등이 있다.
 


 [튀니지 연표]

1881년 프랑스 보호령이 됨.
1911~21년 반식민주의 운동을 진압하기 위한 비상체제.
1921년 6월 3일 데스투르당(자유헌정당) 창당.
1934년 3월 2일 하비브 부르기바가 신데스투르당 창당.
1954년 7월 31일 프랑스에 의한 자치권 인정.
1956년 3월 20일 독립 선언. 4월 9일, 제헌의회 선거 후 부르기바를 총리로 하는 정부 수립. 8월 13일, 남녀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대인법(對人法) 제정.
1957년 7월 27일 군주제 철폐. 공화국 선포. 부르기바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
1961년 비제르트에 주둔 중이던 프랑스군과 격렬한 무력 충돌. 1963년 10월 15일, 프랑스군 철수.
1963년 공산당이 금지됨.
1975년 3월 18일 개헌을 통해 부르기바가 종신 대통령이 됨.
1978년 1월 26일 ‘검은 목요일’. 경제 자유화에 반대하는 UGTT 총파업. 약 200명 사망.
1983년 12월~84년 1월 ‘빵 폭동’ 발생 후 UGTT에 대한 탄압과 방해공작이 자행됨. UGTT 지도자 하비브 아슈르 체포.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를 국가안전국 장관에 임명.
1987년 8월 모나스티르에서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한 테러 발생. 11월 7일, 당시 총리였던 벤 알리가 부르기바의 쇠약한 건강을 핑계로 대통령직 승계.
1988년 데스투르사회당(PSD)이 민주헌정연합(RCD)으로 바뀜.
1994년 단독후보 벤 알리가 99.3% 득표. 1999년 99.9%, 2004년 94.5%, 2009년 89.6% 득표.
1999년 2월 가프사에서 고등학생들의 격렬한 시위. 다수가 연행됨.
2008년 1~5월 가프사 광산 파업. UGTT 중앙지부는 파업을 지지하지 않음.
2010년 12월 17일 무함마드 부아지지 분신. 시디부지드에서 시작된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됨.
2011년 1월 14일 무함마드 간누시 총리가 망명한 벤 알리 대통령을 대신해 과도정부 수반이 됨. 다음날 푸아드 메바자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에 임명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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