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르 디플로 스타일’ 내년에도 계속된다
‘르 디플로 스타일’ 내년에도 계속된다
  • 성일권
  • 승인 2012.12.10 18: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월의 ‘르 디플로’ 읽기

종이신문 위기의 한파가 전세계 언론시장을 엄습하고 있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오는 12월 31일을 끝으로 종이판 발행을 중단하고 온라인 판만 발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독일에서도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와 <파이낸셜 타임스> 독일판이 차례로 폐간을 결정했다. 프랑스에서도 올 한 해 동안 전국지인 <프랑스 수아르>와 <라 트리뷴>이 파산했다. 레지스탕스 운동의 일환으로 창간된 이후 수많은 진보투쟁(알제리 전쟁 반대 및 극단적 보수단체 반대 등)을 이끌었던 주간지 <테무아나주 크레티앙>도 발행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내년부터 월간지로 전환한다.

우리 신문들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경제 위기의 파고와 인터넷 매체의 치열한 공세 속에 일간지나 주간지, 월간지가 저마다 구독률이 뚝뚝 떨어져 위태로운 상황이다. 재벌신문이나 신문재벌의 경우 광고주에게서 뺏은 돈으로 경품과 현금을 뿌리며 허세를 부리지만, 독립언론의 현실과 미래는 암담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크게 줄어든 신문 가판대에도 발길이 끊겼다.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의 경우, 독립신문들이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정부 보조금이나 독자들의 구독료 및 기부금에 대한 세금 환급 등에 힘입어 연명한다. 우리 신문업계엔 언감생심이다. 이유는 간명하다. 우리 정책 당국자들은 애초에 '신문 없는 세상'을 꿈꿔오지 않았던가! 언론의 진흥과 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존재한다지만, 적어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 디플로>)의 입장에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나는 게 없다. 독립언론의 주간지나 월간지 시장이 가뜩이나 힘든 판에 아주 어렵게 받은 광고수주액의 15%를 커미션으로 싹둑 떼가는 그들은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 겉으로는 언론 진흥을 외친다. 실상은 예비 언론학 교수들이 선호하는 고임금의 직장이자, 역대 정권 때마다 부역 언론인들에게 퇴역 보조금 차원에서 억대 연봉을 보장해온 곳이 아니던가? 이번 대선에서도 적지 않은 부역 언론인들이 그 자리를 노린다는 얘기가 들린다. 도움은커녕, 돈만 뜯기는 <르 디플로>의 입장에선 어이없기 짝이 없다. 사실, 우리는 애초에 언론진흥재단 따위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다. 물론 경품이나 현금을 후원해주는 힘있는 광고주도 우리에겐 없다.

<르 디플로>는 오직 독자에게만 의지한다. 저 멀리, 프랑스판 <르 디플로>가 2009년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캠페인을 벌여 모두 4582명의 독자로부터 50만440유로(약 7억825만 원)를 기부받았다는 소식은 적지 않은 감동을 준다. 세르주 알리미 발행인은 "독자들의 결단력 있는 지지 덕분에 심층 보도와 분석 취재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대부분의 신문이 소홀히 다루는 국가들의 소식까지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언론사에 대한 기부문화가 아직 없고, 그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우리 현실에서 <르 디플로> 한국판의 살길은 오로지 독자 여러분들의 사랑과 구독뿐이라는 사실을….

내년에도 우리는 지금처럼 독자들과 함께 체제 순응을 거부하는 '르 디플로 스타일'을 지켜나갈 것이다. 까칠하지만, 때론 부드럽게, 그리고 때론 격정적으로…

 

/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발행인. sungilkwon@ilemonde.com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성일권
성일권 sungilkwon@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