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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딛고 미래를 묻는 매개와 교배의 공간
기억을 딛고 미래를 묻는 매개와 교배의 공간
  • 김지연
  • 승인 2016.09.30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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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 2016

평소와 같은 전시 공간인데 어쩐지 낯설다. 넓은 전시장 안에 어지럽게 놓인 작품들에서는 어떤 질서도, 규칙도 파악하기 어렵다. 관람동선을 안내하는 바닥의 화살표도, 섹션을 나눈 벽도 없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이 작가의 작품이고, 저 작가의 작품인지 유심히 보지 않으면 놓칠 법하다. 또 다른 전시장은 새로운 공간이라는데, 녹슨 철골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는 천장과 낡고 허름한 벽으로 보니 공장 혹은 창고 같다. 이 공간을 채운 작품들은, 다양한 소재와 기법으로 장르와 학문의 영역을 넘나들며, 장소·시간·관객과 전방위로 관계를 맺는다. 
첫 번째 공간은 올 가을의 광주, 두 번째는 부산의 풍경이다. 끝자리가 짝수인 해의 가을이 드디어 돌아왔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국내 미술계에서는 이 짝수 해의 가을이 풍성한 비엔날레의 계절을 의미한다. 광주와 부산 비엔날레를 비롯, 국내 3대 비엔날레에 속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의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이 진행 중이며, 뒤이어 22일과 29일에는 창원 조각 비엔날레와 대구 사진 비엔날레가 문을 열었다.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를 의미하는 ‘비엔날레(Biennale)’는 그 이름처럼 격년제로 열리는 국제 규모의 미술 전시 행사로서, 각국 현대미술의 동향을 확인하고 미술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다. 세계 3대 비엔날레라고 불리는 뉴욕의 휘트니 비엔날레,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 브라질의 상파울루 비엔날레가 대표적이며, 아시아 지역에서는 광주 비엔날레가 최대 규모라고 알려져 있다. 이 비엔날레는 행사의 성격상 일반적인 미술 전시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대중적인 전시에서 만나볼 수 없는 급진적인 현대미술을 선보이기도 하고, 전시의 진행 방식 역시 실험성을 띤다. 또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학술적 교류 및 젊은 미술가를 육성하고, 참여 작가들은 비엔날레 개최 지역의 특성이나 현안과 결합한 신작을 선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매해 기획의 방향성 및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각 주체간의 교류가 중요하다. 즉, 비엔날레는 전시장에서의 결과만을 보여주는 하나의 완결된 서사라기보다, 비엔날레 자체가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작품으로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본 의미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물론 최근 국내의 크고 작은 비엔날레들은 원래의 취지보다는 지자체의 이미지 제고에 활용되거나 상업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때때로 일부 비엔날레는 주제나 동향조차 명확히 보여주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며, 관객의 외면 속에 몇 회 치르지도 못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주요 비엔날레는 여전히, 해당 지역 및 국제 미술의 최신 동향을 알아보고 미술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하며 활발히 교류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올 가을에 열린 우리나라의 대표 비엔날레 중 두 곳, 광주와 부산에서는 동시대의 미술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나아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두 비엔날레는 주제부터 참여 작가들이나 전시 및 프로그램의 방식도 서로 다르지만, 이들의 모습을 통해 공통적으로 비엔날레의 원 취지를 되새기며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부산보다 하루 먼저 문을 연 광주 비엔날레는 올해로 11회를 맞이한다. 올해의 타이틀은 ‘제8기후대(예술은 무엇을 하는가?)’이다. ‘제8기후대’란, 고대 그리스 지리학자들이 찾아낸 일곱 개의 물리적 기후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개념으로서, 상상력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광주 비엔날레는 이러한 타이틀 하에, 기존의 기술이 예측하는 미래에 경도되지 않고, 예술이 예술로서 미래에 대해 말하고 시도하는 능력을 독려한다. 작가와 작품을 한데 모아 일정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작가와 작품, 예술과 사회, 지역과 세계 사이에 크고 작은 간격으로 찍힌 점들 사이를 매개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 <녹두서점: 산 자와 죽은자, 우리 모두를 위한>, 도라 가르시아 - 사진/이지희

1980년대 녹두서점 소환한 광주비엔날레

때문에 올해의 광주 비엔날레는 그 어느 때보다, 과정을 중시했다. 지금까지의 광주 비엔날레와는 다른 스타일이다. 2016년 광주 비엔날레 예술총감독을 맡은 마리아 린드는 지역사회에 최대한 개입하며, 로컬과 글로벌이 소통하는 비엔날레를 구상했다. 그리하여 지난 1월부터 지역협력 큐레이터팀과 ‘월례회’를 개최했고, 큐레이팅 지식을 공유하는 ‘인프라 스쿨’을 운영했으며, 참여 작가 수백여 명과 함께 포럼을 진행하며 두 차례에 걸친 출판을 했다. 또한 동시대의 이야기를 강력하게 해 온 작가들을 선정해 광주의 지역성을 반영한 작품들을 새롭게 창작해주길 요청했다. 이 작품들은 지금, 광주이기에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역시 제목만 보아도 단번에 그 느낌을 알아챌 수 있는, ‘녹두서점 - 산 자와 죽은 자, 우리 모두를 위한’이다. 녹두서점은 광주 계림동에 실재했던 장소로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투사회보를 만들어 배포하고 토론의 장이 벌어졌던, 치열한 항쟁의 거점이었다. 작가 도라 가르시아는 비엔날레 전시장 한 가운데에 이 녹두서점을 재구성한다. 서점의 바깥에는 당시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대자보가 붙여 있고, 서점 안에는 애도의 꽃이 놓여 있다. 서점을 가득 메운 그 시대의 필수 서적들은 전시품인 동시에, 일부를 실제로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하여 작가는 1980년대의 녹두서점을 소환해 2016년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공간으로 재창조하고자 한다. 그러나 작품 안에서 과거의 광주가 단절되고 삭제됐다는 비판적 시선도 일부 존재하며, 사안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성에 비해 작품의 구조가 단순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광주라는 도시-5·18 광주항쟁-녹두서점-비엔날레’라는 점들을 이어, 작은 공간에서나마 당시를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한편 미하엘 보이틀러의 ‘대인 소시지 가게’도 재미있다. 이 작품은 광주 대인시장에서,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과일망과 광고 전단을 이용해 소시지를 만드는 워크샵을 진행하고, 이것을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옮겨 거대한 벽을 쌓아 나간다. 그는 이 종이 소시지들을 만드는 데 사용된 노동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과연 노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점차 쌓여 올라가는 소시지 벽은, 전시관 내의 공간을 나누며 새로운 모습을 창조한다. 
 
 
▲ <대인 소시지 가게>, 미하엘 보이틀러 - 광주비엔날레 제공
 
이들과 같은 맥락으로, 전시장 내에서도 완성품보다는 과정이 중시된다. 비엔날레 측은 일부 창작을 의뢰한 작가들 외에 나머지 작가들에게는 다양한 개념과 복잡한 흐름을 가진 작품들을 자유롭게 선보이도록 했다. 또한 전시장 내에는 가벽을 세워 섹션을 나누고 틀을 확고하게 제시해 온 기존 행사들과 달리, 넓은 공간 안에 불규칙한 느낌으로 작품들을 배치했다. 스펙터클한 공간을 연출하는 대형 구조물도 없다. 사이를 가르는 벽 없이 작품과 작품 간에 관계, 그리고 관객의 자유로운 감상을 우선한 것이다. 그래서 정해진 관람 동선과 섹션에 익숙한 국내 관람객들은 전시장 내부에 들어서면 어떤 작품을 먼저 감상해야 할지 당황스럽고, 작품과 전시의 메시지 역시 난해하다고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공간이 지난 1년 간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과정들의 점과 점 사이를 연결한 매개의 장이자, 닫힌 구조가 아니라 작품-작품, 작품-관객 간의 관계를 통해 재창조되는 열린 구조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오히려 자유로운 감상이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앞서 10회의 역사를 거친 광주 비엔날레이기에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가 아닌가 한다. 
한편 그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내 현안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작품들이 부재한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광주 지역 미술인들은, 지역의 대표 행사인 광주 비엔날레가 세월호와 같이 국내에서 뜨거운 문제들에 대해 말하기를 회피한다며 보이콧 비엔날레를 진행하기도 했다. 사실 이번 비엔날레 출품작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보편적인 사회 비판의 정서들이 발견된다.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역에 천착한 목소리를 발굴하지 못한 것은 외국인 감독의 한계일지도 모르지만, 국제행사인 비엔날레의 큰 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란이 이어지는 것은, 지난 10회 비엔날레에서 벌어진 파문의 영향으로 짐작된다.
당시 비엔날레 개막 행사에서, 세월호 참사를 모티브로 한 홍성담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이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전시가 보류됐고, 이후 책임 큐레이터가 사퇴하며 파행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광주 비엔날레는 수많은 비난과 조롱을 받아야 했다. 눈에 드러나는 비판을 담아야만 꼭 좋은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비판이 금지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래서 지난 광주 비엔날레의 사건은 현재의 보이콧 비엔날레와 연결할 때 시사하는 점이 크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현재 우리나라는, 현실에 대해 더 직접적이고 날 선 비판을 할 수 있는 예술이 필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공장부지의 아방가르드 ,부산 비엔날레

시선을 조금 더 남쪽으로 돌려 보면, 부산 비엔날레를 만날 수 있다. 지속적으로 주 전시관으로 사용해 온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한·중·일 3개국의 큐레이터 5명에 의해, 3개 국가의 자생적인 실험미술인 아방가르드를 조망하는 전시가 열린다. ‘프로젝트1’이라고 불리는 이 전시는, 평가 절하된 60~80년대 한·중·일의 전위 미술을 복원하고 세계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논의를 시작하고자 기획됐다고 한다. 또한 전시와 동시에 세계 학자들이 참여하는 세미나가 열린다. 과거의 흐름을 정리하는 전시인 만큼, 국내 관객들에게는 익숙한 작품도 많다. 이 때문에 비엔날레라는 행사의 취지나,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이라는 올해 주제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세계 미술사의 흐름에서 일정 부분 소외돼 있는 동아시아 미술,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개최하는 비엔날레라는 지역적 특수성의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국제 미술계에 공개되는 행사를 통해 근현대 동아시아 미술의 동향을 정리할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해외 관객들은 새로운 작품이 많아 신선하다는 의견 등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 F1963 - 부산비엔날레 제공
 
한편, 올해 부산 비엔날레의 가장 큰 화제는 프로젝트2 전시가 열리는 새로운 공간 ‘F1963’이다. 원래 와이어를 생산하던 고려제강 수영공장이었던 이곳은 생산공장이 모두 시 외곽으로 이전한 후 오랫동안 창고로 남아있었는데, 2016년 비엔날레 전시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오래된 공장의 형태를 유지한 채 재생건축을 시도했다. 천장을 이루는 거친 철골 구조들은 그대로 노출시켰고, 페인트칠이 낡은 일부 벽도 남겨 뒀다. 공장 지붕을 받치던 나무 트러스는 벤치가, 바닥에 깔려 있던 철판은 대형 커피 테이블이 됐다. Factory의 ‘F’, 공장이 처음 지어진 해인 1963년을 의미하는 이름의 이 공간은, 비엔날레가 끝난 후에도 복합문화공간으로 이용될 것이라고 한다. 
‘F1963’은 예술과 거리가 먼 낡은 공업공간과 첨단 현대미술을 뒤섞고, 와이어공장이었던 과거와 비엔날레관인 현재, 복합문화공간으로 쓰일 미래의 시간을 잇는 공간이자,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의 일터였던 ‘로컬’과 국제 비엔날레라는 ‘글로벌’을 결합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열리는 전시가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이라는 주제에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부산 비엔날레는 고려제강 수영공장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시간과 흔적을 지우지 않고 영리하게 활용하여, 비엔날레 전시관 자체를 일종의 ‘장소 특정적 미술’ 작품으로 만들었다. 
장소 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이란, 미술 작품의 절대성과 보편성을 추구하던 모더니즘 미술의 반동에서 시작된 것으로, 특정한 장소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작품을 뜻한다. 다른 장소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기호가, 특정한 장소의 사회·정치적 맥락, 대중과의 관계와 결합하며 특수한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다. 작품 뿐 아니라 전시가 하나의 작품으로서 특정한 장소와 결합하기도 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전형적인 공간이 아니라, 전시의 의미와 관계된 특별한 공간에서 전시하여 그 의미를 배가하는 경우인데, 이번 부산 비엔날레의 ‘F1963’, 그리고 프로젝트2 전시가 그러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 <Long may you run>
 
광주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지역과 깊은 관계를 맺는 작품들처럼, ‘F1963’ 내에도 그러한 작품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보다 더 구체적 관계를 드러낸다. 유성훈의 ‘공간의 전시’는 5개월 간 고려제강 수영공장이 ‘F1963’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빈 터’를 통해 고향집에 대한 기억들과 전시 공간 간의 연상관계를 나타낸다. 한편 최기창의 ‘Long may you run’은 공장의 옛 벽면에 약 300개의 구멍을 뚫었는데, 이 구멍들은 옛 공간과 새로운 공간을 잇는 틈이자, 잊힌 과거와 달라진 현재, 다가올 미래의 기대가 교류하는 통로를 뜻한다. 그리고 각 구멍들은 ‘과거에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물건이거나 그 일부’, 또는 ‘버리지 못하고 간직했지만 이제는 그 이유가 퇴색한 어떤 것들’로 메워져 있다. 누군가의 서랍 속에서 발견됐을 법한, 오래 전 새로 산 옷의 태그라던지, 공장에서 주운 듯한 목장갑 한 짝 등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유성훈과 최기창의 이 작품들은 더 좁은 장소와 구체적 시간을 촘촘히 이어 나간다. 
비슷한 맥락에서, 부산시립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일본 작가 에노키 츄의 작품 ‘RPM 1200’은 장소와의 관계가 더 눈에 띄게 드러난다. 고베 출신의 작가가 직접 겪은 한신 대지진을 모티브로 제작한 이 작품은, 드넓은 선반 위에 스테인리스 부품 수천 개를 세워 회색 도시의 형상을 만든 것으로, 조금의 충격만 가해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불안감을 상징한다. 그런데 지난 달 일어난 경주 지진이 부산까지 영향을 미치며 ‘RPM1200’의 작품 상당부분이 실제로 무너져 내렸다. 작가와 비엔날레 측은 이 상황이 오히려 작품의 의도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손상된 작품을 복구하기보다는 그대로 전시하며 지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메시지를 전하기로 결정했다. 장소 특정적 미술로 의도하지 않은 작품이, 장소 특정적 미술로 전환된 셈이다. 
이 외에도 부산 비엔날레의 출품작들은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이라는 주제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아날로그와 디지털, 인간과 자연 등을 넘나들며 한데 뒤섞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은 작품의 영원한 절대성보다는 작품의 유동성 및 외부와 이루는 관계에 주목한다. 각각의 작품들은 비엔날레라는 한 공간에서 서로 관계 맺으며 그 맥락을 더욱 강화하고, 공간이나 지역의 특수성과 결합해 의미를 확장한다.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각각의 과정 및 작품이라는 여러 점을 이어 전체를 조망했고, 관객 역시 하나의 점이 되어 자유롭고 능동적으로 감상함으로써 그 맥락을 완성했다. 부산 비엔날레에서도 역시 그 공론의 장에 참여함으로써, 비엔날레의 취지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 비엔날레의 마리아 린드 예술총감독은 ‘다차원적이고 변화무쌍하고 수수께끼 같은 모험의 선상에서 예술작품을 전시하려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부산 비엔날레의 윤재갑 전시감독은 올해의 비엔날레가 ‘시장의 비효율성과 인간의 비합리성, 시장과 제도에 종속된 미술의 근원적 취약성 등을 모두 성찰하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자리’라고 했다. 각자 고민한 방향에 따라, 질문의 답이나 성찰의 결과는 다채로울 것이다. 비엔날레는 완결된 서사가 아니라 전시 중인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글·김지연 
홍익대 예술학과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문화와 예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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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김지연 예술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