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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켠 촛불] 44. 천만을 축하하며
[바람이 켠 촛불] 44. 천만을 축하하며
  • 지속가능 바람 기자
  • 승인 2017.01.12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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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저런 데’ 가 봤어?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는 거야?

‘위험’하지 않을까?

​촛불로 덮인 광화문을, 천막농성 중인 어딘가를 따뜻한 방에서 TV로 보며 이런 질문을 주고받던 때가 있었다. 그때까지 광장은 그랬다. 안타까운 일을 겪은 사람들과 돕고 싶은 사람들이 오는 곳, 그러니 돕고 싶어도 좀 바쁘면 안 와도 되는 곳, 그런데 위험할 수 있으니 자기 일이 아니면 보통 오기 어려운 곳. 한 고인의 장례를 망치려고 서울대병원 앞에 빽빽이 모인 경찰병력을 보기 전까진 그랬다.

10월 말부터 토요일의 놀이판이 시작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광장은 처음부터 과격함 대신 꾸준함을 택했다. 3, 20, 100, 96, 190, 232, 104, 77, 70, 110, 64. 지난 7일 새해 첫 촛불집회에서 누적 참여인원이 천만을 찍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나의 토요일을 떠올리면 지친다는 말을 꾹꾹 삼켜넣었던 기억들이 많다. 사전집회부터 참여하는 날은 두세 시간 동안 도로에 앉아 있었는데, 방석이나 돗자리를 챙기지 않은 날에는 냉기가 온 몸에 퍼져 일어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행진이 시작되면 밥 먹을 새가 없었다. 요깃거리로 종종 찾아오는 허기나 달래다 보면 자정을 넘긴 귀갓길엔 속이 허했다. 그러고 집에 돌아오면 일주일에 겨우 하루 보는 언니가 졸린 눈으로 문을 열어주곤 했다. 자려고 누우면 아직도 손발이 얼어 있었다.

​이외에도 많은 포기가 있었을 것이다. 끼니를, 포근함을, 휴식을, 가족과의 시간을, 하루분의 일당 내지는 주거비를 천만 명이 광장에 헌납해 왔을 것이다. 언제든 과격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데도 사람들을 부득불 모이게 만든 것은 어떤 지각이었다. 촛불을 드는 것은 남보다도 나를 위한 일이라는 지각 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광장은 정말로, 언제든 나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촛불집회의 손익분기점은 높다. 대통령을 쫓아내고도 오늘날 미완의 혁명이라 불리는 4·19를 생각하면 앞으로 촛불이 얼마나 더 모여야 할지 가늠조차 어렵다. 1백만이 1달 반 만에 대통령을 내쫓고(4·19), 6백만이 1달 만에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6월 항쟁) 역사는 천만을 맞이한 우리를 오히려 묘한 불안에 빠지게 한다. ‘이만큼 모였는데?’라는 질문이 마음속에 남는다.

​그럼에도 자축은 필요하다. 오랫동안 밑이 다 깨진 채로 있던 장독을 부수는 것도, 새 독을 짓는 것도 이들에게 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산 떨기엔 목표치에 현저히 못 미치지만 광장이 제법 가벼워지지 않았나. 천만이 나서도 처치곤란인 곳에서 다시 기대를 걸 수 있는 것도 모두 그 덕이다. 어쩌다 이런 구석까지 내몰렸는지를 생각하면 애석하지만 할 일이 많은 새해는 서로를 다독이며 시작해도 좋지 않을까.

​​​

"어쩌다 이런 산골짜기까지 찾아왔대도 그게 둘이서 걸어온 길이라면 절대로 헛된 시간일 수 없는 것이라오."

- <벚꽃새해> 김연수

 

 

 

*이 기사는 지속가능 바람 대학생 기자단이 11월 27일부터 매일 연재하는

[바람이 켠 촛불] 기획기사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항 중인 촛불에 동참합니다.

 

정윤하 / 바람저널리스트 (http://baram.news / baramy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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