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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적 상상력으로 거듭난 매혹적인 미스터리
지리학적 상상력으로 거듭난 매혹적인 미스터리
  • 김도연 | 도서출판 <달콤한 책> 대표
  • 승인 2017.04.2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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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프랑스 베스트셀러 작가 2위를 기록하며 프랑스 최고의 추리작가로 우뚝 선 미셸 뷔시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는 선거지리학을 전공한 루앙대 지리학 교수이자 정치학자이며,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CNRS) 산하단체를 이끌며 지리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성적 사고를 통해 학문적 성과를 내는 지리학자와, 많은 독자들의 감성을 사로잡은 대중적 추리작가는 뭔가 이질적인 조합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는 추리소설 애호가들은 물론, 다양한 독자층을 사로잡으며 문학계의 총아로 떠올랐다. 프랑스에서 2012년에 출간한 <그림자 소녀>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위상을 높였고, 2013년 프랑스 베스트셀러 작가 TOP10 리스트에 8위를 기록하며 쟁쟁한 작가들과 어깨를 견주게 됐다. 언론과 문단에서는 전혀 몰랐던 문학의 이단아가 주목 받는 순간이었다. 

<그림자 소녀>의 성공 이후, 전작 <검은 수련>을 찾아본 사람들은 그에게 더욱 열광했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와, 그가 살던 아름다운 지베르니를 배경으로 세 여인의 운명을 섬세하고 서정적인 필치로 써내려간 이 작품은 역사와 미술, 그리고 문화를 총망라한 프랑스 특유의 세련된 문학적 감수성을 고스란히 녹인 독특한 추리소설이다. 매년 한 권씩 소설을 출간하는 그의 인기는 2013년 이후에도 계속 치솟아 2014년에는 베스트셀러 작가 5위, 2015년에는 3위, 2016년에는 2위로 올라섰다.

그의 소설 속 미스터리 못지않은 미스터리가 있다. 묵묵히 연구를 수행하던 지리학자가 어떻게 추리작가로 성공하게 됐을까?

“사람들은 저를 책 쓰는 대학교수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그 반대입니다. 우연히 교수가 된 작가라고 믿습니다.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늘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만들던 저를 떠올리게 됩니다. 끊임없이 종잇장에 음표들을 그리는 아마추어 음악가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가톨릭 학교 교사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중산층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모범생이었던 미셸 뷔시는 중학생 시절,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에 푹 빠졌다. 수수께끼처럼 이어지는 이야기의 마력에 사로잡혔고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등 다른 소설가들의 작품으로 독서를 확장해나갔다. 그러나 대학학력평가에서 프랑스문학은 낮은 점수를 받았다. 시험문제는 ‘여전히 고전이 필요한가?’였는데 그는 “아니다”라고 썼으며, 고전작품들은 허구라는 사실을 논증했던 것. 그의 대답은 채점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미셸 뷔시는 대학 전공으로 문학이 아닌 지리학을 선택했다.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프랑스어 문법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DEA(기초박사 학위) 과정을 마친 후, 지도교수가 박사 과정 장학금을 제안해 계속 학업을 수행했다. 3년의 박사 과정 동안 미셸 뷔시는 앙드레 지그프리드의 연구업적을 따라간다. 선거사회학의 선구자인 앙드레 지그프리드는, 제3공화국 하에서 프랑스 서부지역의 정치판도를 1913년 출판한 인물이다. 

“연구는 지적인 엄밀함과 창조성을 결합시키는 멋진 직업입니다. 이야기를 만들 때도 같은 요소가 필요합니다. 상상력이 없으면 연구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미친 사람처럼 보인다 해도 연구자는 그래야 합니다”

지리학자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루앙대학교 교수직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 직업 덕에 문학이란 거품 안에 나를 가두는 오류를 피할 수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늘 글을 썼고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기를 좋아했던 미셸 뷔시는 중학생 때 만화 시나리오를 썼고 작사를 했다. 그는 아이디어를 글로 옮기기 전 상상 속에서 방랑한다.

“글을 아주 잘 쓰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멋진 단어, 문장으로 무장하고 스토리를 무시하는 작가들도 많죠. 하지만 책 읽기에서 꼭 필요한 것은 이야기 자체로 놀라는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애거서 크리스티처럼 독자들을 끌고 가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동시에 주는 것입니다. 내 책들은 인생을 반영합니다.” 

미셸 뷔시는 그의 논문지도교수였던 이브 게르몽 뒤를 이어 국립과학연구소 소장이 됐다. 게르몽 교수는 그에게 “해야 할 일들에 절대 우선순위를 두지 말라”고 가르쳤다. 일에 우선순위를 두면 하지 못하는 일들이 늘고, 현실과 단절된다는 것이다. 동일선상에서 모든 것을 하는 것, 이것이 경이감을 지키고 창의력을 살찌우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미셸 뷔시는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서랍처럼 중첩된 플롯에 더해 속임수와 거울놀이로 만들어낸 함정들은 미셸 뷔시가 구성하는 이야기의 특징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느닷없이 비틀린 결말을 만나게 된다.

그는 대부분의 이야기 소재를 자신의 고향 노르망디에서 발굴한다. 그렇다고 그를 지역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미셸 뷔시의 가치를 한정하는 표현이다. 파리만이 프랑스는 아니며, 문학에서도 지역적인 안배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한, 대도시보다 구체적이고 특정한 지역 속에서 인물들을 더욱 실감나게 그릴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국내에서 2016년 출간된 <내 손 놓지 마>는 인도양의 아름다운 휴양지, 레위니옹 섬을 배경으로 다민족, 다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심리와 사건의 동인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지리학자가 쓴 소설답게, 그의 작품에는 생생한 지형적 묘사와 그 지역의 문화, 역사에 대한 사료가 빠지지 않는다. 그는 르완다 대학살에 강하게 분노한다. “언론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지만 르완다 대학살은 20세기 후반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 사실을 가르칩니다.”
미셸 뷔시는 민주화 과정을 연구한 선거지리학자이자 정치학자로서 모든 종류의 불평등에도 분노를 표명한다. “프랑스 사회는 배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경제위기와 더불어 심화됐죠. 스스로를 혁신하지 않는 자칭 엘리트들, 누군가의 아들임을 내세우는 이들과 종종 마주칩니다.”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그의 시각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림자 소녀>에서는,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유아의 정체성을 둘러싼 두 가족의 갈등을 통해 빈곤층과 부유층의 대립, 그리고 언론의 폐해를 보여준다.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절대 잊지 마>에서는 아랍인이자 장애인인 자말을 통해 소수자를 향한 대다수의 편견을 보여주며 희생양의 이미지를 서스펜스 속에 아프게 담아낸다.

미셸 뷔시는 미국식의 단문을 즐겨 쓰며, 강하고 효율적인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를 쥐락펴락하며 말미에는 ‘왜 이걸 미처 생각 못했을까?’ 하게 만든다. 이렇게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단숨에 끌어들이는 힘과 세밀한 고증, 서스펜스와 쉽게 읽히는 문장이 미셸 뷔시 작품의 특징이다. 미국식 시나리오 글쓰기 방식을 적용하는 한편, 결코 흉내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연출한다.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변주하는 힘 또한 탁월하다. 매번 새로운 소재로 돌아오는 그는 올해 10월 마르세유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작품마다 독자들에게 놀라움과 감동, 새로운 세계를 선사해온 미셸 뷔시, 그가 돌아오는 10월, 이번에는 마르세유에서 독자들을 기다린다!  


글·김도연
도서출판 <달콤한 책> 대표.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뒤 출판 기획일을 해왔으며, <로맨틱 블랑제리> <재즈클럼> <내 손 놓지마>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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