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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에서 국민의례를 하는 이유는
프로야구에서 국민의례를 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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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30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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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8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월드베이스볼크래식(WBC) 예선전은 한국과 네덜란드의 국가가 연주된 뒤 시작됐다. 비교적 약체로 평가받았던 네덜란드와의 경기에 국내 팬들과 야구 관계자들은 호쾌한 승리를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0-5 패배. 사상 첫 WBC 제패라는 목표에 한참 못 미치는 경기력을 보여준 한국 대표팀은 경기가 끝난 뒤 비판과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경기 내적인 부분 이외에도 많은 논란거리가 뒤따랐다. 김태균(34·한화 이글스)이 경기 시작 전 애국가가 제창될 때 거수경례를 한 것이다.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 제3조는 ‘제복을 입지 아니한 국민 중 모자를 쓴 국민은 국기를 향하여 오른손으로 모자를 벗어 왼쪽 가슴에 대고 국기를 주목한다. 제복을 입은 국민은 국기를 향하여 거수경례(擧手敬禮)를 한다.’고 명시한다. 이에 맞게 애국가가 연주될 때 야구선수들은 통상적으로 오른손으로 모자를 들어 왼 가슴에 대거나 모자를 벗은 채 오른손을 왼 가슴에 올린다. 지난 8일 열린 네덜란드전에서도 김태균과 이대은(27·경찰 야구단)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은 일반적인 국민의례를 했다. 예외가 있다면 군인 신분인 선수들이다. 군복무 중인 선수들은 모자를 착용한 상태에서 오른손을 들어 경례를 한다. 이대은은 군인이므로 시행령에 맞게 거수경례를 했다.

문제는 김태균의 거수경례였다. 김태균은군인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모자를 벗고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는 것이 맞다. 일각에서는 그의 거수경례에 가지각색의 추론을 덧붙이기도 했다. ①옆에 있는 이대은이 거수경례를 하니까 자신도 모르게 따라서 했을 것이다. ②군인이 아니어도 국가대항전에 국가대표로 출전했으니 유니폼은 제복이고, 그래서 거수경례를 했을 것이다. ③극도의 긴장감이 낳은 실수였을 것이다. 온갖 추측과 그를 위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날선 화살은 피할 수 없었다. KBO리그에서 수많은 경기를 치루고 그만큼의 애국가를 들었던 선수가 어떤 이유에서든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경기 시작 전 국민의례는 야구 이외의 종목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프로 농구 역시 경기 개시는 국민의례와 함께 한다. 프로농구연맹(KBL)은 국가가 연주될 때 선수들은 하던 행동을 중지하고 도열해야 한다는 규약을 만들기까지 했다. 한편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경기개시 직전에 애국가가 방송될 때 벤치 내에 있는 선수는 벤치 앞에 나와 정렬하며, 기타 경기장 내에 있는 심판위원과 선수는 모자를 벗고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얹는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조항의 마지막에는 ‘연주가 종료될 때까지 개인 돌출행동 금지’라고 명시했다.

2017 KBO 리그 규정 경기 중 선수단 행동 관련 지침

프로 스포츠 경기 전 애국가 연주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입장료를 낸 관중들을 위한 행사에서 국가를 위한 의식을 우선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국가주의의 잔재라고 지적하는 측은 80년대 영화관에서 애국가를 듣고 대한늬우스를 시청한 뒤에야 영화가 상영되던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반해 일부에서는 국민의례 행사가 애국심을 고취하는 순기능을 발휘하고, 무엇보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경기 전 국민의례를 하는 것이 관행이라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손꼽히는 인기종목들은 대부분 경기 시작 전 국민의례 순서를 갖는다. 특히 미국프로야구(메이저리그, MLB) 뉴욕 양키스 구단은 7회초 종료 후 ‘God Bless America’를 제창하면서 911 테러 희생자를 기리는 동안 관중들도 일어나서 꼼짝할 수 없게 하는 정책을 만들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노래가 나오는 동안 화장실을 가다 경찰에게 제압당한 한 관중이 연방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뒤에야 ‘꼼짝마’ 정책은 폐기됐다.


2016년에는 미국프로풋볼(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소속의 콜린 캐퍼닉이 국가가 연주될 때 기립하지 않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캐퍼닉은 미국 사회에 만연한 경찰의 폭력과 흑인 등 유색 인종에 대한 불평등 때문에 “성조기에 자부심을 표출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캐퍼닉이 앉은 채로 국가를 듣는 일이 있은 뒤 SNS에서는 그를 향한 살해협박까지 있었다. 일부에서는 스포츠에 정치적 견해를 덧씌운 것은 비판받을 일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NFL 선수들과 구단은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에, 선수 개인은 국가연주 의식 참여 여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며 캐퍼닉과 함께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논란에 당시 임기 중이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의 소신을 표현하기 위해 헌법상 기본권을 행사한 것이다. 많은 스포츠 스타들도 그렇게 해 온 역사가 있다. 캐퍼닉의 행동은 논의가 필요한 주제에 더 많은 토론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라운드 안의 선수들과 심판 등 모든 인원이 꼼짝하지 않고 태극기를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KBO는 앞서 언급한 리그 규정에 행동 지침은 마련해뒀지만 행동 지침을 따라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KBO리그 144경기는 모두 KBO의 주관으로 진행된다. KBO는 사단법인 단체로 정부기관이라고 볼 수 없다. 정확하게는 일정한 목적으로 결합한 다수를 아우르는 법인격적 단체다. 사단법인 주관으로 치르는 KBO리그 경기는 한 팀 당 2-3명의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면 모두 한국인으로 구성된 국내 팀과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요컨대 국가대항전처럼 국가를 연주하고 국기를 활짝 펼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하지만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개별 행동이 금지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현실이다.

캐퍼닉의 경우처럼 개인적 판단으로 국민의례를 거부하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창원 LG 프로농구단은 경기 시작 전 국민의례 때 스트레칭을 한 용병 데이본 제퍼슨을 퇴출하기도 했다(물론 그의 방출에는 그간 보였던 골치 아픈 행실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게 타당할 수도 있겠지만). 애국가가 연주될 때 제퍼슨이 보였던 행동은 최소한의 존중과 거리가 멀었다는 점에서 김태균 거수경례 논란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누가 잘못된 방식으로 국가에 대한 예의를 차렸고, 그게 왜 잘못됐는지만 따질 뿐이다. 스포츠를 즐기기에 앞서 왜 조국의 상징을 보고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없다.

당연함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에서 발전은 없다. 800만 관중을 돌파한 KBO리그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당연하게 듣다보면 머지않아 전광판에서 대한늬우스가 방영되는 망상도 망상은 아닐까 한다.

 

동지훈 / 바람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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