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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원청의 품격'…재하청 주고 노동자 사고 ‘나 몰라라’
대한항공, '원청의 품격'…재하청 주고 노동자 사고 ‘나 몰라라’
  • 최주연 기자
  • 승인 2018.01.10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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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대한항공은 재하청 노동자의 작업장 내 사망과 연장근무, 비인간적 노동행태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한항공, 자회사 한국공항에 지상조업 전반 하청 줘
…한국공항, 제3의 인력업체와 계약·재하청 줘 

산재신청 않는 관행에 공식적 산재발생율은 현저히 낮아
연장노동과 강도 높은 육체노동에 노동자 근골격계 질환 호소


작업장 내 노동자 사망에도 母子회사는 자유로워

 

우리나라 헌법은 천부인권에 바탕을 두고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라고 규정한다. 지위와 부(富), 성별에 관계없이 같은 목숨 값으로 사회 구성원을 존중할 것을 (표면적으로는)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말 신분제가 폐지되고 우리는 스스로 민주주의국가임을 천명하고 지금껏 민주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헌법에 명시된 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같은 목숨 값으로 존중받고 있는가. 어쩌면 동물적인 ‘약육강식’이 우리사회를 추동시키는 유일한 공식은 아닌가. 하루에도 몇 번씩 불거지는 강자의 승승장구와 약자의 무기력한 패배는 우리에게 많은 의문을 던진다.

대한항공은 한진그룹 계열사 중 하나로 국내 최대 항공사로서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기업이다. 최근 대한항공은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으로 오랜 기간 전 국민적 지탄을 받았고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마저 회삿돈을 자택 인테리어 비용으로 떠넘기는 이른바 ‘인테리어 비리’로 지난해 검찰에 불구속 송치된 바 있다. 그리고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대한항공은 재하청 노동자의 작업장 내 사망과 연장근무, 비인간적 노동행태로 또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한항공의 자회사 한국공항 직원의 작업장 내 죽음과 살인적 노동실태, 또한 하청노동자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지난해 말부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대한항공과 계약한 외국항공사들의 지상조업 업무와 항공기 내부 청소를 담당했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한국공항에서 하는 일이라며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번 사고들을 비단 한국공항의 일로만 한정시킬 수 있을까.
 
이번 사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한항공과 한국공항, 그리고 모 인력업체의 인력 운영 메커니즘을 알 필요가 있다. 대한항공은 항공기와 관련한 대부분 노동과 지상조업에 관한 일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 자회사인 한국공항에 하도급을 줘 일임하게 하는데, 일감을 받은 한국공항은 직접 고용하기도 하지만 제3의 업체에 재하청을 줘 일임하게 한다.
 
지난 9일 대한항공 관계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공항에서 하는 일”이라며 “한국공항과 인력업체와의 관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일축했다.
 
현재 대한항공은 한국공항 지분의 59.54%를 소유하고 있으며, 하청 과정을 거칠수록 본래 일감을 줬던 원청은 책임에서 멀어지고 자유를 얻는다.


원청 : 하청 : 재하청 = 대한항공 : 한국공항 : 인력업체

 
살인적 연장노동에 다쳐도 ‘쉿’, 사업장 내 사망에도 과로사 인정 안 해
 
지난 12월 13일 한국공항 직원 이 모 씨가 출근직후 쓰러져 숨졌다. 이 씨는 월평균 50시간 연장근무에, 퇴근부터 다음날 출근까지 연속휴게시간이 10시간이 못 미쳤는데 이러한 근무가 한 달에 5~6일이 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사업장은 월 100시간에 달하는 연장노동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이 씨의 유족들은 12시간 넘게 일한 날이 일상이었으며 과로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는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며 과로사 인정에 대해 미적지근한 반응이다.

이 씨 유족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해 10월 머리를 다쳐 두피가 15cm가량 찢어졌고, 3월에는 작업 중 다쳐 무릎 연골이 심하게 파열돼 산재보험을 신청하려 했지만 ‘당일에 신청 하지 않으면 무효’라며 인정할 수 없다는 회사의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산재보험 신청은 사고일로부터 3년 안에만 청구하면 유효하다.
 
이 씨 뿐만 아니라 한국공항의 노동자들은 근무 중 다치더라도 회사에 산재를 인정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재가 발생하더라도 팀 관리자는 산재 신청을 하지 못하게 하고 연차를 써서 쉬게 하거나 병원에 가더라도 ‘회사에서 다쳤다고 하지 말고 의료보험으로 해라’라고 강요했다는 것.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러한 문제 원인에 대해 산재신청 시 관리자가 승진에서 누락되고 고가를 잘 못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손가락 살점이 잘려나가도, 근무 중 다쳐 팔이 완전히 펴지지 않더라도 공상처리를 하지,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재 신청 안하는 관행 덕에 한국공항 산업재해 발생율은 평균 재해율의 3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의 한국공항 산재 발생 내역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 11월까지 5년 여간 산재 보상을 받은 직원 수는 24명이었다. 이는 연 평균 4.8명이 산재 승인을 받은 셈이며 2750명의 현장 직원 수를 비율로 따지자면 약 0.17% 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공항 측은 지난 18일 해명자료를 내 “해당 직원은 정상 근무시간 외에 연장근로는 법이 허용하는 주 12시간을 초과한 바 없고, 현장 내 주요부서의 연장근무 시간은 월평균 23시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유가족과 노동조합 측은 지난 18일 ‘한국공항 노동자 과로사 진상규명과 특별근로감독 실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램프여객, 화물, 항공정비 등 회사의 주요부서가 80~90시간 대 연장근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업계 1위의 회사가 근로기준법조차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공항 내 하청 조업사 수천여명의 노동자들의 처지는 더욱 심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 바 있다.
 

▲ 열악하게 노동할 수밖에 없는 틀을 만든 것은 모(母)기업과 자(子)기업인 대한항공과 한국공항이지만 노동조건에 대한 최종 책임은 지지 않는다.
 
 
재하청 청소노동자 열악한 노동 환경에 골병들어도 말 못해
 
대한항공 항공기 내부 청소는 모 인력업체가 한국공항에 하청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이 ‘재하청 노동자’ 90% 이상은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고 있다. 비행기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신체가 불편한 상태로 장기간 신속하게 동일한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스크와 장갑도 착용하지 않고 화학약품에 무방비 노출돼 청소해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청소노동자에게 역시 산재 발생 보고 의무는 지켜지지 않았다. 산재가 발생할 경우 개인 휴가를 쓰거나 장기간 요양이 필요할 경우엔 퇴사 후 재입사해야 했다. 또한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으며, 다치면 사비로 병원비를 충당해야 했다. 게다가 비행기 기름 값이 나간다는 이유로 에어컨도 히터도 틀 수 없었다.
 
이에 한국공항 원‧하청 노동자가 공동투쟁에 나섰다. 지난 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장시간 노동과 산재사망 근절 추모 결의대회를 열었고, 지난 8일 오전에는 인천 고용노동부 중부지방노동청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모 인력업체에 고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원청 대한항공‧한국공항, 노동자 현실에 ‘잠잠’
 
법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책임이 없는 대한항공과 한국공항은 이같은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한국공항은 산재 신청 못하는 관행에 대해 ‘그런 경우는 없다’라고 못 박고 있다. 열악하게 노동할 수밖에 없는 틀을 만든 것은 모(母)기업과 자(子)기업인데 최종 하청을 받은, 파견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인력업체만 최종 책임을 떠안고 있다. ‘다단계 하청’으로 이익을 얻는 쪽과 근로조건을 책임질 쪽은 분리돼 있으며, 이 ‘하청의 하청’ 구조는 노동자를 고장 나면 고칠 필요 없이 교환하면 되는 한낱 ‘부속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헌법은 천부인권에 바탕을 두고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구성원을 같은 목숨 값으로 존중하고 있지 않다. 동물적인 ‘약육강식’이 우리사회를 추동시키고 있으며, 재하청 노동자들은 힘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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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연 기자
최주연 기자 dodu103@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