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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숨바꼭질: 어둠의 속삭임> ― 사라지는 아이들과 복수의 제의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숨바꼭질: 어둠의 속삭임> ― 사라지는 아이들과 복수의 제의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18.06.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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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라지는 아이들

 
아이들이 사라진다. 근래 개봉한 영화들에서는 초자연적 존재로 인해 아이들이 사라진다. <손님>(2015)에서는 부르지 않은 손님이 온 후 지도에 나오지 않는 산골 마을의 쥐떼와 아이들이 사라진다. <장산범>(2017)에서는 딸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소녀를 데려온 후 아이들과 어른들이 사라진다. 2017년에 개봉한 미국·콜롬비아·스페인 합작영화 <숨바꼭질: 어둠의 속삭임>(Out of the Dark, 2014)에서도 붕대 감은 유령들을 따라간 아이가 사라진다. 
 
2. 복수와 희생제의
 
<숨바꼭질: 어둠의 속삭임>에서는 아버지의 가업을 위해 콜롬비아 시골 저택에서 살게 된 사라 부부와 딸 해나에게 일어나는 기괴한 사건을 담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어른의 잘못으로 아이가 실종된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으로 자손에게 복수의 피해가 돌아간다. 붕대 감은 유령이 나타난 후 딸 해나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린다는 점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자신이 행한 일과 같은 종류의 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 대상은 달라진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아이가 희생양으로 바쳐지는 것인데 부모가 이에 강력하게 저항하면서 대결구도로 나아간다. 
 
희생양의 조건은 공동체 내부/외부에 있는 자, 공동체의 죄를 짊어지는 자, 복수의 위험이 없는 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공동체 내부에만 있어서 외부에 있지 않고, 공동체의 죄를 짊어지는 자의 자손이지만 죄를 짓지 않았고,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가 있기 때문에 복수의 위험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희생양으로 부적합하다. 인간에게 가장 심한 고통이 죽음이고, 그 중에서 고통스러운 순서가 자식의 죽음, 배우자의 죽음, 부모의 죽음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바로 억울하게 죽은 과거 아이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자신들에게 가장 소중한 자식의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3. 전도된 숨바꼭질
 
<숨바꼭질: 어둠의 속삭임>에서는 숨바꼭질의 숨기/찾기의 의미를 전도시킨다. 초현실적 존재에 의해서 합의되지 않은 게임이 진행된다. 자발적 숨기가 아니라 해나를 강제로 숨기기이다. 해나를 찾기 위해 떠난 여정은 낯설고 두려운 존재, 나아가 과거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즉 익숙한 상황을 낯설게 인식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숨바꼭질은 숨기/찾기의 게임이 아니라 아이의 목숨과 과거의 진실을 맞교환하는 게임으로 바뀐다. 숨바꼭질은 숨은 자를 찾으면 승리하는 게임이지만, 이 영화에서 숨바꼭질은 숨은 자를 찾으면 패배하게 되는 게임이다. 
 
<숨바꼭질: 어둠의 속삭임>에서 괴물은 무엇인가? 처음에 괴물은 붕대를 감은 아이들 유령이지만, 나중에 아이들을 실험 대상으로 이용한 기업인이 진짜 괴물임이 밝혀진다. 괴물은 사실상 제3세계에 진출한 외국기업,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어른들의 탐욕이다. 아이들 유령은 그들이 살지 못한 미래와 비례해서 그 원한의 정도가 더 깊어진다. 
 
이 영화에서 복수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는 역전된다. 과거 가해자가 현재 피해자가 되고, 과거 피해자가 현재 가해자가 된다.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의 영혼 대신 해나가 등가물로 바쳐진다. 해나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가족의 잘못으로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해나는 그 기업으로 억울한 죽음을 발생시켰던 사람의 손녀이고, 현재 그 기업을 이어받기 위해서 온 사람의 딸이고, 향후 그 기업을 이어받게 될 상속자이다. 그래서 해나는 현재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과거 가해자의 손녀, 현재 (잠정적) 가해자의 딸, 미래 가해자인 것이다.
 
인형 ‘실버’는 해나에게 갖고 노는 장남감이지만 사용가치가 떨어지면 버리게 되는 물건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외국기업에게 제3세계는 자신의 나라에서 환경적, 경제적, 물리적으로 하기 힘든 일을 하고 이익을 창출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형 ‘실버’와 같다. 이런 점에서 붕대를 칭칭 감은 어둠 속 아이들이 다가오고, 저택의 화물 승강기에 놓여 있는 실버를 잡으려던 해나가 실종되고, 실종된 해나를 찾기 위해 화물 승강기에 갔다가 사라가 갇히고 등등. 붕대감은 유령, 인형 실버, 딸 해나, 엄마 사라 등으로 계속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바로 이러한 제3세계와 외국기업의 관계를 암시한다. 
 
 
4. 배제의 원칙과 어둠의 속삭임
 
<숨바꼭질: 어둠의 속삭임>은 낯선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질적인 공포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아이들이 사라진다. 그리고 마을의 오싹한 전설 뒤에 숨은 잔인한 진실이 밝혀진다. 하지만 아이들의 실종이나 죽음이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과거 희생양으로 바쳐진 아이들과 현재 희생양으로 절대 바쳐질 수 없는 아이를 구별하고 배제하는 원칙이 여전히 적용되기 때문이다. ‘어둠의 속삭임’은 바로 억울한 죽음으로 어둠 속에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속삭일 수밖에 없는 존재를 의미한다. 
 
 
재개봉일 : 2018년 6월 19일(화) 오후 7시
장소 : 이봄씨어터 (신사역 가로수길_문의 : 070-8233-4321)
 
사진 출처: 네이버 - 영화 - <숨바꼭질: 어둠의 속삭임> - 포토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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