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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치>, 익숙하지만 낯선 현실의 발견
<서치>, 익숙하지만 낯선 현실의 발견
  • 성진수(영화평론가)
  • 승인 2018.10.2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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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치>는 10대 딸이 실종되면서 아버지가 딸이 두고 간 노트북과 인터넷 상의 정보들을 통해 딸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는 가족멜로드라마 플롯과 딸의 실종을 둘러싼 진실이 밝히는 미스터리 플롯으로 이루어진 영화다. 이야기 내용 차원에서는 크게 낯설지 않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감독이 이 이야기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보여주기로 결정한 것에 있다. 영화 <서치>의 특별함은 카메라가 모니터를 향해 있으며 그 앞을 떠나지 않는다는 데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시도는 영화 홍보의 중요한 메시지였고 영화를 본 다수의 관객과 평자들 또한 그 형식에 대해 언급했다. 영화평론가 박지훈은 “쓰다 지워버린 메시지들, 머뭇거리는 커서, 끝내 휴지통에 넣어버린 동영상” 등이 인물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모니터 안의 움직임들을 통해 인물의 감정과 마음까지 표현해내는 <서치>의 방식을 시적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반면, 어떤 관객들은 모든 정보를 인터넷이나 컴퓨터의 다양한 앱을 통해 관리하거나, 영상통화를 하거나, CCTV를 활용하는 것 등이 오늘날 당연한 일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는 전혀 새롭지 않다는 지적을 리뷰에 남기기도 했다. 상당히 일리 있는 지적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상의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꾸어 생각해보면 왜 그 동안 이런 현실을 <서치>처럼 담아낸 영화가 없었던 것일까? 그 동안의 영화는 우리의 현실을 왜 영화화하지 못했을까?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면 <서치>는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문제의 해결방법을 찾아냈을 때 그 해결방법이라는 것이 너무 쉽고 당연한 것이어서 주변 사람들은 ‘그건 나라도 하겠다’고 하지만, 사실 그 해결방법은 그 사람이 말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아이러니. 누군가 한 다음에는 쉽게 따라할 수 있지만 남이 하지 않은 일을 처음 하는 것은 그 만큼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영화의 가치는 분명해진다. <서치>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오프라인 뿐 아니라 온라인에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발견’의 사전적 정의는 ‘미처 보지 못했던 사물이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찾아냄’이다. 이 영화 이전에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온라인의 영토 혹은 디지털 세계의 영토가 가상이 아니라 우리의 진짜 현실의 일부분임을 발견한 처음이자 유일한 영화가 <서치>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서치>가 과연 ‘콜럼버스의 달걀’일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온라인 세계가 가상이 아닌 현실임을 이 영화만큼 직접적인 영화적 경험으로 만들어낸 영화는 기존에는 없었다. 따라서 <서치>의 영화적 신선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영화 형식은 결국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형식은 <서치>가 현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임과 동시에 현실에는 이런 세상도 포함된다는 것을 말하는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서치>는 이미 존재하고 있고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현실의 영토를 영화적 방식으로 재발견한 영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영화의 형식’이라 칭했던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전의 영화들이 물리적인 3차원의 현실 세계에 카메라를 세워놓았던 것과 달리, <서치>가 2차원의 모니터 앞에 카메라를 세워 놓았다는 것이 단순히 형식의 차별점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세상을 보는 관점의 이동과 그에 따른 내용과 주제의 문제가 아닐까? 영화를 포함한 예술에서 형식과 내용, 형식과 주제를 분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형식을 단순히 형식의 차원이 아니라 내용의 차원으로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때에만 <서치>의 가치를 제대로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형식에 대한 기존의 주장과 달리, 극영화로서 <서치>는 기존 영화가 사용해 오던 관습적인 영화적 표현 방식에 기대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만약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익숙한 기존의 영화적 표현 방식을 벗어났더라면, 가족멜로드라마와 미스터리가 어우러진 이 이야기를 관객들이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고 상업영화로서도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래의 두 장면을 보자. ‘그림1’과 ‘그림2’는 딸 마고가 실종되기 전 아버지 데이빗과 화상통화를 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그림1’의 모니터 전체 쇼트에서 ‘그림2’의 데이빗 클로즈업 쇼트로 바뀐다. 데이빗의 클로즈업에서 그가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은 것에 대한 꾸지람을 하자, 다시 ‘그림1’의 쇼트로 바뀌어 마고의 반응을 보여준다. 이러한 숏의 배치는 3차원의 세계에 놓인 카메라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에서 흔히 보는 대화 장면과 동일하다.

 

 

 

 

이것은 일례일 뿐, 클로즈업의 사용, 풀 스크린 장면을 풀 쇼트나 롱 쇼트처럼 사용하는 방식, 패닝이나 틸팅 혹은 롱테이크 쇼트에 대응하는 모니터 상에서 움직이는 커서를 따라가는 카메라 등의 형식은 서사 전달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 대중 영화의 관습적 방식에 기대고 있다. 관습적인 영화 형식의 활용은 <서치>를 상업, 대중영화로서 위치 짓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영화가 형식적으로 새롭다고 말하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앞서 박지훈 평론가의 글을 인용하면서 언급했던 것들은 어떠한가? 커서의 깜빡임, 마우스 포인터의 움직임, 써지고 지워지는 텍스트는 이 영화를 어떻게 특별하게 만드는가? 그것이 형식의 문제인가? 영화는 기본적으로 카메라를 이용해 어떤 대상을 찍는 행위를 창작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영화는 다양한 대상을 카메라 앞에 둔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일 것이다. 극영화가 특정한 시공간에서 행동을 주고받는 인물에 관한 허구, 즉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때, 배우는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핵심적 도구다. 배우의 크고 작은 움직임은 행위와 사건을 만들고 정서와 감정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극영화에서 카메라 앞에 가장 중요하게, 자주 위치하는 것은 배우일 것이다. 그것이 배우의 신체 전체이든 일부분이든 간에 말이다. 하지만 2차원의 모니터 앞에 카메라를 세워 둔 <서치>의 경우 배우는 기존 영화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현된다. 배우는 카메라 앞에 직접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니터라는 2차원 세계를 경유해서 카메라 앞에 존재한다. 노트북의 카메라에 의해 촬영된 결과물인 이미지를 통해 배우가 존재하듯이, <서치>가 주목하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에 들어가는 창인 모니터에서는 배우의 움직임에 토대를 둔 연기를 대신하는 요소들이 존재한다. 바로 그것이 마우스 포인터, 지워지는 텍스트, 커서 등인 것이다. 이런 요소들은 컴퓨터의 일부분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인물의 일부분, 곧 배우의 연기 그 자체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마우스 포인터, 텍스트, 커서, 이동하는 폴더 등의 요소는 모니터 세계에서 배우의 연기나 행위에 대한 등가물이며, 그것은 형식적인 수단을 넘어서 카메라가 보여주는 대상, 즉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는 여러 가지 표현 수단을 가지고 있다. 촬영, 편집, 사운드, 조명, 배우의 연기와 세트, 소품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표현 수단이 상호 관계 속에서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물이 곧 영화다. 그 중에서 촬영은 영화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주지 않을지,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보여줄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 <서치>는 모니터 앞에 카메라를 두고 찍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3차원 공간에서 촬영을 한 후 그 촬영한 이미지들은 모니터 화면에 놓인 것처럼 재구성한 영화라 설명되는 게 더 정확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은 모니터 앞에 놓인 카메라의 눈을 통해 펼쳐지는 세계를 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실제 제작 과정과 상관없이 <서치>는 모니터 앞에 카메라를 두고 세계를 바라보는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영화적 특징이 혁신적인 이유는 그것이 새로운 형식적 실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한 특징이 형식의 차원에서 뿐 아니라 모니터 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무화시키고 모니터 세계의 모든 요소들이 현실과 동등하다고 말하는 내용의 측면에서 작용하면서, 그 현실에 대한 총체적인 경험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서치>의 특별함이 있다.
관객들이 이러한 사실을 <서치>를 통해 새삼스레 알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실 속 일상을 통해 관객은 이러한 현실을 경험해오고 있고 이미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리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뒤쳐진 것은 이러한 현실을 포착하는 영화의 시선, 영화적 상상력이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서치>의 도착은 늦었지만 필연적인, 진부하지만 새로운, 그리고 익숙하지만 낯선 현실의 발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봄영화제
상영 : 2018년 10월 30일 (화) 오후 7시 영화 상영 및 해설
장소 : 이봄씨어터 (신사역 가로수길)
문의 : 070-8233-4321

글 : 성진수
영화평론가, 제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신인평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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