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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세금에 분노하는 이유
그들이 세금에 분노하는 이유
  • 알렉시스 스피르 | 사회학자
  • 승인 2018.11.2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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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일조 납부>, 1618 - 피터르 브뤼헐 주니어

프랑스의 유류세 반대시위는 특히 저소득 노동자와 독립소상공인 사이에서 나오던 조세 불공정에 대한 불만을 그대로 분출시켰다. 조세가 재분배 수단인 국가에서, 사회계층의 저변에 속하는 사람들이 세금을 문제 삼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징세 중단” “구두쇠 마크롱” “일터 가는 일이 사치가 됐다.” “좌와 우=세금” “강탈을 멈춰라, 강력한 민중 봉기는 혁명으로 이어진다.”
지난 11월 17일 유류세 인상에 항의하기 위해 간선도로를 차단한 대중 집회에서 펼쳐진 다양한 슬로건은 이 시위가 정치적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과 동시에, 분노가 매우 정확한 대상을 겨냥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20세기 내내 서민계급은 세금문제와는 상대적으로 분리돼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뒤이어 이뤄진 누진소득세의 도입은, 납세자 협회로 몰려든 숙련된 자유직업인, 자영업자 그리고 농민의 반란을 불러일으켰다.(1) 
 
 
복지국가의 기초인 세금

인민전선(1936~1938)의 기간을 제외하면 조세 불공정이라는 사안은 급여인상 요구나, 특히 고용 보장이라는 사안과 비교했을 때 노동 운동에서 지엽적인 자리를 차지했을 뿐이다. 부가가치세가 전체 세수 비중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소득세가 세수의 25%에 불과할 정도로 간접소비세의 불평등성이 드러날 때도 노동조합과 좌파 정당들이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적은 드물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다시 불붙은 세금 저항은 반(反)긴축투쟁의 주요쟁점으로 떠올랐다. 포르투갈에서는 2010년 5월, 수만 명이 세금인상과 예산삭감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조금 지난 후에 스페인에서는 수십만 명의 ‘분노한 사람들’이 긴축예산, 사유화, 부가가치세 인상에 반대하기 위해서 모였다. 당시 학교교재에 대한 부가가치세가 4%에서 21%로 인상됐다. 그리스에서는 공공 및 민간 분야 노동자들이 임금삭감과 조세 부당성에 항의하고자 거리로 몰려나왔다. 몇 달 뒤엔 해고 위협을 받은 프랑스 농산물 가공공장의 노동자들이 환경세 징수에 저항하기 위해 농민과 소상공인들이 전개한 ‘붉은 모자’ 운동에 가담했다. 

조세에 관한 의견이 분분한 것은 공공정책의 잦은 변화에서 비롯된다. 실업난이 가중되고 국제경쟁이 심화되자 정치인들은 임금과 이윤으로 이뤄지는 소득의 1차 분배에 나서는 것을 점차 포기하게 됐다. 특히 몇 년 사이에, ‘이익 공유’를 위한 세제 정책은, 대중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세제 혜택 이슈에 그 자리를 내줬다.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의 ‘더 많이 벌기 위해서 더 많이 일하자’는 슬로건과 초과근무에 대한 면세계획은 급여로 생활하는 많은 노동자들을 현혹했다. 

5년 후, 정권을 잡은 사회당 출신의 프랑수아 올랑드는 연 100만 유로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는 75%의 세금을 물리자는, 다분히 서민적 색채가 강한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그 방법론이 너무 엉성한 나머지, 헌법재판소는 그의 정책을 위헌으로 판정했다.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 역시 ‘기득권층 후보’라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주민세 폐지를 들고나왔지만, 이후 이 정책은 3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같은 세금 문제의 정치화는 중대한 역설을 안고 있다. 서민계급은 과세에 기초한 재분배 정책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지만, 과세수준을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 서민층의 수가 가장 많다는 모순이 있다. 지역별로 볼 때 불신의 성격과 강도는 다르게 나타난다.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일수록 조세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강하다. 농촌 및 도시 외곽의 주민들은 파리시민과 대조적으로 조세 체계에 매우 비판적이다. 더군다나 주택 소유를 권장하는 방향으로 수년간 정책이 취해진 후, 주택 구입을 위해 빚을 진 서민 가계는 부동산세의 지속적인 인상을 겪었다. 

부동산세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보조금 축소를 보완하려는 방편이었다. 그러나 부동산세로 거둔 세수가 부족한 몇몇 지역에서는 공공서비스의 질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철도노선의 폐쇄로 교통 불편을 가중시켰다.(2) 더군다나 이 지역 주민들은 차로 대부분 이동하기 때문에 유류세 인상을 그대로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우체국에서 기차역, 학교에 이르기까지 여러 기관들이 그들 주변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 기관들은 그동안 ‘세금’으로 조성된 국고 덕택에 해당 지역에 설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탈세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국세청의 세금 징수 관리에 대해서도 불신이 생겨났다. 2010년 프랑스 최대의 부호인 릴리안 베탕쿠르가 1억 유로 이상의 세금을 은닉해, 사르코지의 선거운동을 지원한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제롬 카위작 사건이 일어났다. 제롬 카위작은 탈세와의 전쟁을 담당하던 올랑드의 예산부 장관이었다. 그는 2013년 스위스에 60만 유로가 은닉된 계좌를 가지고 있다고 시인했다. 그는 이전에 그 사실을 부인한 바 있다. 이와 동시에 언론의 황당무계한 연속극이 시작됐다.

룩스리크스, 스위스리크스, 오프쇼 리크스, 파나마 페이퍼스, 파라다이스 페이퍼 등의 사건들은 다국적기업, 정치지도자, 스포츠 및 연예계 유명인의 조세회피의 실상을 폭로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세금 앞의 평등을 동화책 속 우화로 만들어버렸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한쪽은 재정을 살찌우기 위한 노력을 받아들일 것을 명령받은 보통의 납세자이며, 다른 한쪽은 결코 불안해하지 않고 법적 제약에서 벗어난 특권자(2017년 사망한 베탕쿠르에게는 어떤 형사적 제소도 취해지지 않았으며, 카위작 씨는 징역 4년에 처했지만 곧 자유의 몸이 됐다).

서민계급이 정부를 보며 겪은 실제 경험은 ‘이중 잣대’라는 인식을 더욱 강하게 심었다. 가난한 납세자들은 대체로 복잡한 세제 관련 용어를 이해하기 어렵고, 따라서 이들이 권리를 행사하려면 주로 공무원에게 의존해야 한다.(3) 그런데, 공무원 감축으로 창구 관련 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정부는 공공재정 업무에서, 특히 접수를 맡는 공무원들 3만 5,000명 이상을 정리했다. 농촌 지역에서 공무원의 수는 더욱 줄었고, 도시 지역에서는 대기시간이 길어졌다. 이로 인해 디지털 업무보다 대면접촉을 선호하는 저학력 납세자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주민세, 부동산세 혹은 수신료 등을 내러 가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 생기는 요청에 관해서는 특히 더 그렇다. 실업 및 고용 불안 증가와 함께, 이 같은 신청 건수는 2003년 69만 5,000건에서 2015년 140만 건으로 늘어났다. 더군다나 사회계층에 따라 세금 징수 공무원의 환심을 사는 정도도 다르다. 2017년에 시행된 조사에 따르면, 관공서와 언쟁을 벌인 납세자들 중, 상위 계층 69%는 만족한 결과를 얻었지만, 서민층의 경우 만족한 결과를 얻은 비율이 51%에 그쳤다. 

경제위기 이후로는 관료주의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더 심해졌다. 구매력이 정체하거나 줄어든 급여생활자와 소자영업자에게 세금은 공공서비스의 반대급부라기보다는 추가적인 지출로 느껴진다.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갑절로 늘어난다. 청구된 금액을 낼 수 없다는 무력감에 내가 내는 세금이 ‘특권층’을 위해 쓰일 것이라는 불신이 커진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산업구조 해체와 고용 축소는 공장의 해외이전에 반대하지 못하는 지도자의 무능력을 여실히 드러냈다. 사회 보장을 약속하는 대신 강력한 권한을 부여받았던 국가가 이제는 권력자들에게만 봉사하는 막연한 기관인 것 같다. 

더군다나, 특히 국제경쟁력을 강화해야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세금은 종종 고용 지속성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세금이) 고용 비용을 가중시킨다”는 언론의 반복적인 보도와 (프랑스보다 세금 부담이 적은) 독일과의 편향된 비교 보도로, 급여노동자와 고용주가 협력해 정부 과세와 과잉 규제를 문제 삼기도 한다.  

고용주가 아웃소싱을 적극 활용하는 곳에서 노동자들은 분열하기 마련이다. 계속되는 파업과 불안정으로 심하게 고통 받는 저학력 청년층, 직장인, 노동자들에게 있어 과세는 저항의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는 문제다. 저소득층 노동자들은 지나치게 개별화되어 소속감과 연대의식도 취약하다. 이 노동자들의 지위는 공무원이라는 신분이 제공받는 안정성과는 너무 동떨어져있다. 따라서 그들은 과도한 보호를 받는 공무원과 국가에 일종의 반감을 키워나간다. 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취약계층은 자영업을 탈출구로 삼지만, 그마저도 어려운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과세에 속박당한 중소기업의 이미지는 이러한 어려움에 무관심한 국가를 연상케 한다. 존엄성, 합당한 보수를 대가로 삼는 노동 가치에, 세금으로 재정지원을 받는다는 구제의 낙인이 더해진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고용은 보장하겠다”는 명분하에 이뤄진 정부의 과세와 그에 따른 저소득 노동자의 불안정화는 서민계층의 불신을 더 키웠다. 

이러한 정부의 약속도 결국에는 서민계층을 배신했다. 정치인들은 과거 선거 운동을 할 때는 중산층(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 집단)과 상류층이 세금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큰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1980년대 초부터 소득세를 줄일 수 있는 면세 조항이 늘어났다. 반면에 부가가치세는 모든 소비자에게 동일하게 부과됐고, 유류세는 어떤 특례도 없이(운수업은 예외) 인상됐다. 정당 및 협회에 대한 기부, 가사 도우미, 임대업 투자, 에너지 개발 등 많은 면세 항목은 한편으로 과세 대상 가계의 청구액을 줄여줬지만, 심지어 가장 부유한 사람들에게조차 세금을 최소화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했다. 

이 같은 면세조항은 과세 수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적어도 하나의 면세 혜택을 받는 납세자는, 전혀 혜택을 받지 않는 사람보다 “프랑스는 세금 폭탄의 나라”라고 평가하지 않을 가능성이 약 1.4배 더 높다. 지난 가을에도 프랑스 정부는 부자들을 이롭게 할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줬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최종적으로 세액 공제액의 60%를 애초에 계획된 시점보다 앞당겨, 6개월 이후가 아닌 2019년 1월부터 환급하기로 결정했다(프랑스의 연말정산 시기는 원래 이듬해 8월이지만, 환급 시점을 앞당겨 환급액의 60%는 이듬해 1월에, 나머지 40%는 7월에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고소득자들의 평균 세금감면액은 전체 근로소득자의 평균 감면액보다 훨씬 많다-역주).

이와 함께 다수당은 듀트레일 협정(4)을 확장시켜 최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듀트레일 협정이란 기업주 사망 시 상속 혹은 그보다 이른 주식 증여를 통해 상속세 전부 혹은 일부를 면제해준 법이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된 세액은 공공재정에서 매년 약 5억 유로를 차지했는데, 마치 ‘선물’과도 같은 이 법이 수혜자에게 실로 엄청난 이익을 준 셈이다. 

이 기간, 언론인들과 정치지도자들은 ‘노란 조끼’(세금 반대 시위대의 옷이다-역주)에 시선을 집중시키며, 환경을 보존해야만 하는지, 자동차 운전자를 질식시켜야 하는지를 궁금해한다(환경보호를 위해 발표된 유류세 인상으로, 프랑스 내 디젤유 가격이 23% 상승했다). 만약 ‘노란 조끼’ 운동의 계승자가 누구일지를 따져 보기가 아직 이르다면, 이 운동의 첫 공적은 오랜 기간 불공정 조세를 참아온 서민층에게 돌아갈 것이다.  
 
 
 
글·알렉시스 스피르 Alexis Spire
사회학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 CNRS)의 소장. 2,700명을 표본으로 2017년에 진행된 설문조사와 관청 창구의 납세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정성적 설문조사를 진행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정리한 연구집이 『국가에 대한 헌신의 표현인 세금에 대한 저항, 프랑스 납세자에 대한 연구 Résistances à l’impôt, attachement à l’État. Enquête sur les contribuables français』(Seuil, Paris, 2018)다.
 
번역·유승경 hymangyoo@naver.com
프랑스고등사회과학원(EHESS) 박사과정. 

 

(1) 니콜라스 드랄란드(Nicolas Delalande), 『세금 전쟁, 1789년부터 현재까지의 동의와 전쟁Les Batailles de l’impôt. Consentement et résistances de 1789 à nos jours』, coll. L'Univers historique, Seuil, Paris, 2011.

(2) 장-미셀 뒤메이(Jean-Michel Dumay), ‘마크롱은 중소도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La France abandonne ses villes moyenne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5월호·한국어판 2018년 6월호. 

(3) 야스민 시블로(Yasmine  Siblot), 『일상의 권리를 주장하라, 빈곤 지역의 공공서비스(Faire valoir ses droits au quotidien. Les services publics dans les quartiers populaires)』, coll. ‘Sociétés en mouvement’, Presses de Sciences Po, Paris, 2006.

(4) 2003년 8월 제정된 듀트레일 법(중소기업청 장관인 르노 듀트레일(Renaud Dutreil)이름을 딴 법) 혹은 경제주도권 법(loi pour l’initiative économique)에 의해 확립된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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