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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어른들을 위한 동화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어른들을 위한 동화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4.04.0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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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하면 거짓말, 거짓말하면 피노키오. 아이들에게 "거짓말하면 네 코가 길어질 거야"라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거짓말이 나오는 동화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2022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되고, 95회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디즈니와 픽사 계열이 아닌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최초로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수상이자, <윌레스와 그로밋> 이후 17년 만에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영화가 수상했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란?

정지하고 있는 인형과 같은 피사체를 조금씩 움직이며 동작이 이어지게 만드는 영상을 말한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손끝으로 빚어낸 시네마>를 추천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면 수많은 인형과 세트를 직접 손으로 만들고 하나하나 움직여 촬영하는 제작진의 열정이 느껴진다. 영화 준비기간이 무려 15년, 천일의 촬영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 15년을 30분으로 압축해서 보여준 다큐를 보고 있으면 새삼 시네마라는 게 하나의 예술을 넘어 협업을 토대로 한 노동집약적인 예술 산업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피노키오'라는 이야기

피노키오 이야기의 첫 시작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1년 이탈리아 최초의 어린이 잡지에 「피노키오의 모험, 꼭두각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2년에 걸쳐 서른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연재된다.

이걸 1883년에 『피노키오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책으로 엮었다. 이후 1940년 애니메이터였던 월트 디즈니가 '자신이 만든 가장 멋진 작품'이라고 평한 애니메이션 영화 <피노키오>가 만들어졌다. 이후 피노키오 이야기는 세계 각지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로 실사영화로 수없이 만들어져 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피노키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건 어려운 작업이다. 같은 이야기를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재창작된 작품으로서의 특별함이 필요하다. 델 토로 감독의 특별함은 늘 그래왔듯 20세기에 일어난 전쟁이라는 시대적 맥락을 가져온 데 있다. 원전의 주제인 아들의 죽음, 아버지의 비애, 어른들의 인간성에 대한 고발은 무솔리니 파시즘이 도래했던 20세기 초라는 현실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순간 영화는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받고 감정은 더 극대화된다.

 

그렇게 동화 같은 원작 이야기와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를 잘 엮어 만든 델 토로 버전의 피노키오가 탄생하였다. 형식에서는 한 땀 한 땀 손으로 제작된 수공예 스톱 모션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으로 작품의 매력을 높이고, 내용에서는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동화 같은 세상과 세계대전이라는 어른들의 음울한 세상이 공존하는 세계를 동시에 그려냈다. 그래서 영화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피노키오의 판타지 같은 모험에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어른들은 자신들의 인간성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로 어른이 꼭 봐야 하는 성장 동화가 만들어졌다.

 

어른을 위한 동화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를 떠올리면 어른 말씀 잘 듣고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따끔한 교훈이 떠오른다. 사실 원작 피노키오는 이런 교훈을 넘어 19세기 말 이탈리아 사회를 향한 풍자와 심오한 상징으로 가득했다. 말썽을 일으킬 때마다 가혹한 시련을 숱하게 겪으며 더디게 철들어 가는 피노키오의 모습은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에 대한 경고와 함께 짙은 연민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1940년 디즈니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통해 피노키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가 되었지만, 원작 속 풍부한 상징과 통렬한 풍자는 상대적으로 덜 부각 되어 왔다. 델 토로의 애니메이션에서는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아이보다 못한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원작이 가졌던 사회를 향한 풍자와 심오한 상징을 느낄 수 있다.

 

아이를 이용하는 어른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에서 원작을 살린 델 토로 특유의 기괴함과 놀라운 상상력은 영화에 등장하는 세 명의 어른 캐릭터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세 명의 공통점은 ‘피노키오’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지 않고 어른들 각자 자기 생각에 맞게 바꾸려 한다는 점이다.

먼저 피노키오의 아버지 제페토는 피노키오를 사별한 아들 카를로와 닮은 꼴로 만들려고 한다. 파시스트인 포테스타 시장은 피노키오가 무한히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전쟁에 이용하려 한다. 자기 아들과 함께 아이들을 모두 자신이 옳다고 믿는 파시스트의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 훈련시킨다.

 

서커스 단장인 볼페 백작은 가장 노골적으로 "너는 내가 조종하는 대로 해야 해"라며 피노키오를 꼭두각시로 조정해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델 토로 감독은 권위주의 독재 정권에서 겪는 순수한 아이들의 위험을 판타지로 승화시켜 표현했던 영화 <악마의 등뼈>(2001) <판의 미로>(2006)와 함께 이 영화를 삼부작이라 불렀다.

 

"피노키오, 거짓말을 해!"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말은 아이를 선한 존재로 성장시키기 위해 어른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제페토는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지니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따끔하게 말해왔지만, 괴물에게서 탈출하려고 할 때 피노키오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권한다.

어른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이들의 행동을 모두 바꾸려 하지만 아이들의 자발적인 행동이 상황에 따라서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깨닫는 순간 아버지 제페토는 고백한다. “피노키오, 이젠 카를로가 되지도, 다른 누군가가 되지도 말아라. 네 모습 그대로 살아라.”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에 아름답다

피노키오는 소나무(pine tree)로 만들어져 죽음이 없는 무한한 삶을 살 수 있다. 피노키오는 약간의 대기시간만 있을 뿐 여러 번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존재였지만, 제페토를 살리기 위해 무한한 생명을 포기하고 삶의 유한함을 선택한다.

결국 죽게 된 피노키오를 다시 살린 건 디즈니 버전처럼 피노키오의 선함에 감복한 푸른 요정이 아니라 크리켓이 요정과의 거래를 통해 얻은 한 가지 소원 들어주기를 사용하는 자기희생으로 피노키오의 부활이 이루어진다. 델 토로는 피노키오와 크리켓의 선택을 솔방울로 상징되는 의미 있는 삶의 유한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한한 삶 속에서 인간이 가진 선한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영화 시작과 끝에 클로즈업된 솔방울을 통해 들려준다.

 

기예르모 델 토로

<판의 미로>로 아카데미 각본상, 촬영상을 수상했고, 제90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셰이프 오브 워터>로 기억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데뷔작은 1993년 <크로노스>로 칸 영화제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미믹>의 각본과 연출, <악마의 등뼈> <블레이드2> <헬보이> 등 다크 판타지로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델 토로가 만들어 내는 영화 속 세상은 행복한 분위기보다 기괴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도 전체 관람가 등급이지만 한 5분 정도만 봐도 델 토로의 인장이 박혀있는 영화다.

 

목소리 연기

애니메이션 하면 목소리 연기를 누가 했을까, 궁금한데 초호화 캐스팅이다. 특히 케이트 블란쳇이 대사 한마디 없이 사람 말투를 어설프게 따라 하긴 하지만, 대부분 끽끽거리는 원숭이 울음소리만 내는 원숭이 스파타투라 역을 맡았다.

델 토로와 <나이트메어 앨리>에서 함께 작업하면서 블란쳇이 차기작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고 제안했는데, 남은 역이 원숭이 스파타투라 밖에 없다고 했지만,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말하는 귀뚜라미 크리켓에는 이완 맥그리거, 푸른 요정과 죽음의 요정에는 틸타 스읜튼 등 연기파 배우들의 목소리를 듣는 재미가 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전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전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전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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