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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의 일상화, 일상의 나락화
나락의 일상화, 일상의 나락화
  • 한유희 | 문화평론가
  • 승인 2024.10.31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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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무결한 사람은 없다. 그렇게 ‘보이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보다’라는 행위는 언제나 권력관계로 독해할 수 있지만, 최근에 ‘보이다’는 ‘보다’만큼이나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보이기를 원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이제 익숙해진 직종이지만 여전히 낯선 직종이 있다. 바로 인플루언서다. 그들의 다른 이름은 BJ, 스트리머, 크리에이터, 유튜버, 여캠·남캠이다. 그들은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 탄생했고, 그로 인해 부와 권력을 거머쥔다. 신문, TV 같은 기존 대중매체와 달리 뉴미디어인 유튜브나 틱톡과 같은 SNS에서 수용자는 그들이 볼 만한 콘텐츠,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그만큼이나 수용자들은 자신의 요구와 욕구를 충족시켜줄 누군가를 찾는 데 적극적이며, 빠르게 이동한다. 그들은 인플루언서들에게 영향을 받는 만큼 ‘좋댓구알’을 통해 영향을 끼친다. 그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그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명인, 선을 넘다

대중이 바라보고 있는 ‘유명인’은 과연 누구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채널을 운영하는 그들은 과연 어디까지가 그들 자신인 것인가. 결국 우리는 정체성에 대해서 질문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통용되는 이유는 결국 누구도 나 자신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에게서 수도 없이 많은 그들을 이루는 조각 중 중 일부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당신의 모든 것이 좋다고 하지만, 누구도 ‘모든 것’을 내보일 수 없다. 이러한 간극을 알면서도 너무나도 쉽게 간과한다. 대중과 미디어의 적극적인 수용자들은 자신의 관심을 받을 누군가를 찾는다. 하지만 간택을 받은 ‘누군가’는 완벽한 사람도, 완전무결한 사람도 아니다. 대중의 흥미는 금방 식을 뿐만 아니라, 빠르게 등을 돌린다. 유명해진다는 것은 빠르게 잊힐 수도 있다는 점과 동시에 또 다른 방식의 정동을 요청한다. 바로 비난이다.

유명세는 언제나 비난과 함께다. 유명인이 직업이 된 뒤 딜레마는 점차 커지고 있으며 더욱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인기인이 감당해야만 하는 도덕과 윤리적 수준은 어디까지인가. 또한 그들을 재단하는 기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최근 인기 유튜버들이 지속적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물론 직접적인 범죄를 저지르거나 연루된 유튜버를 제외하고도 대중들의 지탄을 받는 유튜버들이 많아진 것이다. 흔히 유튜버가 사고를 친다고 보통 표현하지만, 진짜 ‘사고’인지 누가 평가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아슬아슬하게 선 위에 서 있는 유튜버다.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눈길을 끌어야 하고, 관심을 받아야 한다. 그들이 끊임없이 자극적인 콘텐츠를 기획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하지만 언제나 선 ‘위’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생각과 콘텐츠는 대중들에게 재단되며 ‘선을 넘는’ 콘텐츠로 판별된다.

우선 ‘선을 넘었다’고 언급된 사건 중 가장 대중에게 주목받은 사건은 바로 300만 구독자를 지닌 피식대학의 영양군 지역 비하 사건이다. 2024년 5월 11일 피식대학이 유튜브 채널에 게시한 ‘메이드 인 경상도’ 경북의 영양 편 영상에서 출연진 세 명의 대화가 문제가 되었다. 사실 ‘메이드 인 경상도’는 경상도 지역 곳곳을 여행하며 지역을 소개하겠다는 취지로 구성된 콘텐츠다. 영양군 이전의 영상에서는 지역만의 특색을 살리며 대중의 관심을 이끌었다. 그러나 영양 편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음식부터 시작하여 지역 전반의 모든 점을 부정적으로 발언했다. 이후 논란은 일주일간 지속되었으며 결국 피식대학 측에서는 사과문을 게재하였고 관련 영상들을 삭제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는 인기 유튜버가 사회적 영향력을 누리는 만큼, 그에 걸맞은 책임과 윤리 의식을 요구하는 대중의 적극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피식대학은 논란 이후 영양군에서 발생한 침수 피해를 적극적으로 도왔으며, 영양군의 홍보대사를 도맡고 있다. 논란의 대상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였고, 동시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피식대학의 사례는 논란을 ‘잘’ 해결해나간 사례다.

 

나락과 비난

하지만 애매한 논란도 있다. 가장 최근 논란이 된 곽튜브 사건이다. 2024년 9월 16일, 곽튜브에 업로드된 이탈리아 여행 편에 학교폭력 가해 논란과 멤버를 괴롭혔다는 논란이 있던 APRIL(에이프릴) 전 멤버인 이나은이 출연해 발생한 사건이다. 곽튜브는 이나은에게 학교폭력 연루 논란을 이유로 출연을 차단하였는데, 이후 기사를 통해 오해했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한다. 이어 오해를 받아 슬펐다는 이나은의 대화가 담긴 영상을 업로드했으나 곧바로 비난이 쏟아졌다. 여러 가지 폭력에 가담했다는 의혹이 있는 사람을 굳이 게스트로 삼았다는 점과, 학교폭력을 대리 용서한 듯한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같은 날 밤 곽튜브는 유튜브 커뮤니티를 통해 “제 개인적인 감정이 모두의 입장이 되지 않도록 깊이 생각하겠습니다”고 바로 사과문을 게재하였고, 2차 사과문까지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튜브는 논란의 중심에 선다. 물론 잘못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실수들은 있을 수 있다. 게스트 선정과 학교폭력에 관한 오해를 푸는 과정에서의 뉘앙스는 직접적으로 곽튜브가 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의 실수 혹은 잘못은 부풀려지기 시작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우선 뉴스 기사로 보도되면서 곽튜브는 대중들의 비난을 받았고, 동시에 지금까지 출연했던 콘텐츠들이 편집되어 조리돌림을 당하기 시작한다. 대중은 곽튜브가 이전의 행동들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방식으로 조롱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곽튜브와 친분이 있는 유튜버 빠니보틀에게까지 너 또한 똑같다며 나락에 가라며 비난을 퍼붓는 일까지 발생한다. 사실 곽튜브 논란은 곽튜브의 영상이 이만큼의 ‘문제’가 되어야만 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서 지적하지 않는다. 다만 유명하니까 비난받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속될 뿐이다.

 

누구를 위한 사과인가

문제는 논란거리로 볼 수 없는 논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유튜버 하누는 일본 도쿄 여행 브이로그(Vlog) 영상을 게재했다. 하지만 3·1절 하루 전날 일본 여행 영상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이후 하누는 “기존에 계획했던 업로드 일정에 차질이 생겼고 업로드가 미뤄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날짜를 체크하지 않고 업로드를 하게 되었다”라며 “제가 끼칠 영향력을 생각했으면 더 깊게 생각하고 행동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을 사과하였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한일커플 유튜버인 토모토모 오사카성 사례다. 그들은 오사카성 근처에서 꽃놀이를 하며 오사카성 부근이라 차가 막힌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댓글에서 오사카성이 역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비난에 결국 사과문을 올린다. “꽃놀이를 하러 간 장소 부근인 오사카성이 역사적으로 문제가 있는 곳이라는 걸 최근 댓글을 통해 깨닫게 되어 영상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해당 영상을 시청하시면서 실망감과 불편을 느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며 사과를 한다.

더 황당한 논란은 바로 유튜버 하알라의 반려견 앙꼬에게 한우를 주는 콘텐츠에서 발생한 일이다. 동물을 학대한 것도, 방임한 것도 아니다. 한우를 강아지에게 주었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이후 하알라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분들 입장에서는 그저 개일 뿐이라는 걸 안다. 영상을 보는 입장이 다를 텐데 그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이해 못 해 죄송하다”며 사과문을 게재한다.

과연 이들은 사과문을 올릴 정도로 잘못했을까. 그들은 직접적으로 어떤 잘못도 끼치지 않았다. 피해를 입은 사람 또한 없다. 어떻게든 논란거리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만들어낸 논란은 ‘유명인’들을 매도한다. 비난의 화살을 즉각적으로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여러 명이 유명인들이 논란으로 인해 몰락하는 과정을 본 이들의 선택은 그저 ‘사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의 사과를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이 여전히 남는다. 불편해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이 당위적인가? 구독자가 많은 영향력이 높은 유튜버이기에 높은 윤리성과 도덕성을 담보로 한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그 선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또한 용서는 누가 어떤 식으로 하는 것일까. 어떤 문제도 없는 영상을 지우고, 사과문을 올리는 것이 용서를 바라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인가. 유튜브라서, 유튜버라서. 이중적인 굴레를 씌우는 것은 결국 대중이다.

 

나락은 ‘락(樂)’이라는 환상

고난은 구경거리로 전락한다. 그것도 매우 적나라하게 말이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유명인의 몰락에 가담한다. 마치 유희거리처럼 적극적으로 유명인들의 날개를 꺾으려 한다. 유명인들의 추락을 단순히 개인의 나락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지금의 상황은 위험한 수준에 다다랐다. 서로가 서로를 불안정한 상태로 몰아넣으며 다 함께 무너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통해 수치는 전시된다. 오늘의 유명인이, 내일의 탕아인 것이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다음 타자는 당신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의 모든 일상은 언제고 나락에 갈 수 있다.

 

 

글·한유희
경희대학교에서 K-컬처 스토리콘텐츠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아이돌 팬덤과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화 현상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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