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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의 문화톡톡] '국가애도기간'에 대한 고찰(1): 내 일이 아닌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일까?
[이지혜의 문화톡톡] '국가애도기간'에 대한 고찰(1): 내 일이 아닌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일까?
  • 이지혜(문화평론가)
  • 승인 2024.12.31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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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애도와 사적애도에 관한 짧은 견해(1) 비극을 기억하는 방식: 애도는 우리와 함께 산다



여러모로 참담하고 어수선한 연말이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재난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의 연속이다. 요즘은 영화도 드라마도 흥미가 없다. 일상의 순간들이 오히려 더 영화 같고 드라마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비단 나뿐일까.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2024.12.29) 소식을 들은 순간, 알 수 없는 무게감에 마음이 짓눌렸다. 생을 살면서 겪어온 수많은 참사 소식이 PPT 화면처럼 차곡차곡 떠올랐다.  손가락도 까딱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싫었다. “당장 내 일이 아닌 일들에, 나랑 상관없는 죽음에 왜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서 슬플까? 일상생활에 지장을 끼칠 정도로 슬픈 건 문제가 있지 않을까?” 요즘 같은 세상에 너무 소모적인 감정에 잠식되어 손해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참 부박한 감정이었다. 이러한 슬픔을 갈무리하기도 전에 약 5일간의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되었다. 사전적 의미에서 '애도(哀悼)'란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을 뜻한다.

말하자면 '국가애도기간' 이란,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할 수 있도록 국가가 '감정의 유통기한'을 규정한 기간이었다.

 

 

기호가 상처를 남긴다: 상실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 퐁티는 애도가 신체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이라고 말했다. 상실이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몸으로, 공간으로, 그리고 기호를 통해 기억된다는 것이다.

그는 '애도'가 당장 '누구의 잘못'이라는 명확한 대상에 귀속되지 않고,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과 기호 속에 각인된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노란 리본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듯이, 노란 리본이라는 기호는 추모의 의미를 함의한다. 이태원 참사 이후 좁은 골목길을 지날 때 느끼는 불안함은 아직까지도 정책으로 해소되지 않고 개인의 몫으로 남아있다. 이제 제주항공 사고 역시 공항에서 항공사 로고를 볼 때마다, 혹은 비행기를 탈 때마다 떠오를 것이다.

이렇게 애도는 기호와 공간에 남아 우리의 몸과 감각을 통해 반복적으로 상실을 떠올리게 만들고 일상에서 지속된다.

 

 

기억의 무게: 우리는 왜 애도하는가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그리고 왜 우리는 이런 애도의 감정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까? 그건 아마도 우리가 그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더 관심을 가졌다면”이라고 말했고, 이태원 참사 역시 “안전 관리를 제대로 했더라면”이라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므로 애도는 단순한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사회적 책임감이다. 결국 애도는 사회적 트라우마와 연결되는 것이다.

그 상실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비극을 몸과 감각으로 기억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현재 개인의 의지에만 기대어 귀결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각자도생을 받아들이는 것이 똑똑한 선택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그러므로 개인의 책임으로만 남은 애도 사이에서, 우리는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국가애도기간' 선포를 듣고, 나는 솔직히 안심했다. 그 기간 동안 마음껏 슬퍼해야지라는 마음과 동시에 그 기간 이후에는 불확실한 죽음 앞에서 운 좋게 생존했다는 죄의식을 제치고 일상을 살아도 되겠지?라는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지치는,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애도에 기간을 정해준 이가 있다는 것에 당장 안심하거나, 애도 자체를 외면하는 선택을 할 수 있어서 솔직히 기뻤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애도

그러나 댄서 겸 안무가 '킹키'가 지난 2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업로드한 게시글을 보고 '애도'에 대해, 슬픔에 대해, 인간다움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하게 되었다. 그는 "나는 눈치가 사회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라며 눈치가 곧 사회적 공감을 뜻하고, 남들이 모두 슬퍼할 때 그게 뭔지 모르더라도 함께 고개를 숙이고 침묵해 주는 것 그 자체로 위로가 되고 우리 사회를 공동체답게 만들어 준다고 믿는다는 의견을 서술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이 '척'이라고 할지라도 그 '척'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고 이야기했다.

값싼 동정이라도 값이 싼 마음이 모이면 그 값이 얼마나 될지 나는 감히 예상하지 못한다며, 내가 나눈 마음이 척일지라도 언젠가 찾아올 나의 슬픔 또한 이렇게 위로받기를 바란다며 끝맺음하는 그의 방백 앞에서 깊이 반성했다.

그러니까 나는 '척'조차도 외면할 뻔했던 것이다. 슬픔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인간다움이 무엇이었는지 잊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인간다움이란 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나로 귀결될 타인의 슬픔을 바라보고 위로할 수 있는 것이었다.

 

댄서 겸 안무가 '킹키' SNS 갈무리ⓒ 킹키(@kinky.coming) 인스타그램
댄서 겸 안무가 '킹키' SNS 갈무리ⓒ 킹키(@kinky.coming) 인스타그램

애도는 끝나지 않는다:  ‘불가능한 애도’

이미 오래전 자크 데리다는 “애도는 완성될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상실한 대상을 완전히 극복하거나 잊는 것은 불가능함으로, 결국 부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사건은 시간이 흘러도 완전히 잊히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이태원 참사가 그랬듯이 제주항공 사고 역시 기억 속에서 계속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공항에서 항공사 로고를 볼 때마다, 혹은 비행기를 탈 때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떠올릴 것이다. 비극을 잊는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상실감을 함께 안고 살아갈 때,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애도는 살아가는 방식이다

다시, 감정에 유통기간을 붙일 수 있는가. 제주항공 참사는 국가애도기간이 지나도 우리 안에 남을 것이다. 애도는 단순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삶 속에서 부재와 공존하며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도는 감정이자 책임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비극적인 사건 앞에서 우리는 계속 질문하게 된다.

 

“어떻게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할 수 있을까?”

제주항공 사고,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는 모두 우리가 지닌 책임감과 연대의식이 만들어내는 애도의 과정이다. 애도는 상실을 단순히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기억하고, 부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 자체가, 사회적 애도의 시작이자 끝없는 여정이다.

 

글·이지혜(이해이)
문화평론가. 2022년 문화전문지 《쿨투라》 제16회 영화평론 신인상으로 등단.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글쓰기를 강의하며 한국문화콘텐츠와 문화현상을 연구한다. 월간 《쿨투라》에 영화평론을, 서울책보고 웹진 <e-책보고>에 에세이를 연재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문화톡톡에 문화평론을 기고중이다.

· 인스타: @leehey_cine · 이메일: leehe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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