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에 대한 영화, 즉 ‘메타 시네마’는 영화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영화 자체를 소재로 삼고 제작 과정을 다뤄, 영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돕는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바빌론>(2023)은 1920~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사를 관통하는 메타 시네마이다. 그중 집중적으로 다루는 시기는 1920~1930년대이다. 1920~1930년대 미국 할리우드에선 무성 영화가 번성했다가, 유성 영화로 넘어가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바빌론>은 이 시기를 조명하여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변화상을 담아낸다.
<바빌론>은 할리우드 배우들과 제작자들이 모인 파티장에서 온갖 잡일과 웨이터 일 등을 맡아 하던 매니(디에고 칼바)의 시선을 따라간다. 영화계를 동경하던 매니는 파티장에서 유명 배우 잭(브래드 피트)의 눈에 들어 함께 영화계 일을 하게 되고, 이후 영화사 임원으로 성장한다. 이 같은 시도는 다수의 메타 시네마가 영화 감독 또는 배우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것과 차별화된다. 아눈 일종의 ‘거리두기’에 해당한다.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넘어가며 할리우드 영화계 주요 주체들의 흥망성쇠에 해당하는 큰 맥락과 흐름을 보다 객관적 시선에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바빌론>은 파티장-촬영장-극장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영화는 파티장으로 매니, 잭, 넬리가 각각 도착하며 시작된다. 매니는 파티장의 잡일을 해야 해서, 잭은 파티의 VIP로, 배우를 지망하는 넬리는 할리우드 관계자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파티장에 온다. 이같이 영화는 파티장을 활용해 서로 공통분모가 없던 세 인물을 하나로 모은다.
다음 날, 이들은 모두 촬영장에 있게 된다. 매니는 잭의 마음에 들어 영화에서 스태프로 참여하게 되고, 넬리는 전날 파티장에서 영화 관계자의 눈에 들어 배우로 데뷔한다. 그리고 이후 영화는 촬영장을 주요 공간으로 삼고, 촬영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촬영장의 형태, 촬영장 내에서의 배우들의 모습 등이 차츰 변하는 것을 보여주며 할리우드 영화계 전체의 변화를 담아내는 식이다.
처음 매니, 잭, 넬리가 영화를 찍는 곳은 야외 촬영장이다. 하지만 점점 실내 촬영장으로 바뀌어 가는데, 이는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넘어가는 변화에 따른 것이다. 음성 녹음 기술이 완벽하지 않던 시절, 매끄럽게 녹음을 진행하기 위해선 야외 촬영보다 실내 촬영을 해야만 했던 상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배우들의 상황도 급변하게 된다. 야외 촬영장에서 자유롭고 즉흥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넬리는 실내 촬영장 안에서 모든 소리가 통제되는 가운데 미리 짜 맞춰진 연기만을 수행해야 하고, 이에 따라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바빌론>에서 극장은 인물들이 그 변화를 더욱 체감하는 장소로 활용된다. 넬리는 극장에서 관객들이 자신이 출연한 첫 무성 영화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 이후 매니는 극장에서 작품을 보다가, 관객들이 유성 영화에 놀라워하며 갈채를 보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 극장 밖으로 달려나가 잭에게 전화를 걸고, 유성 영화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뀔 것임을 예고한다. 또한 무성 영화 시절 전성기를 누린 잭은 유성 영화로 넘어가며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극장에서 관객들이 자신의 연기를 보고 비웃는 것을 몰래 지켜보며 비참해한다.
이 영화의 클로징 역시 극장에서 이뤄진다. 매니는 수십 년이 흐른 1952년, 미국에 있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지난날을 회고한다. 그리고 이때 스크린엔 이들의 지난 과거 일들이 담긴 영상, 실제 영화사를 아우르는 영상이 순차적으로 상영된다. 결국 셔젤 감독은 극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변화와 이에 따른 관객의 반응 변화를 담아낸다. 나아가 영화를 만들어 온 수많은 이들에 대해 존경과 헌사를 바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김희경
인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상물등급위원회 자체등급분류 사후관리위원,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은평문화재단 이사, 영화평론가, 만화평론가로 활동. 前 한국경제신문 기자, 前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경영 겸임교수, 前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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