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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담담한 균형 <새벽의 모든>
[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담담한 균형 <새벽의 모든>
  • 정우성(영화평론가)
  • 승인 2025.01.13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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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과 형식의 과감성이나 툭 튀어나오는 의외성과는 거리가 먼 <새벽의 모든>은 무난한 드라마처럼 보인다. 영화관과 유사한 플라네타륨(planetarium)의 모습과 카메라를 들고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학생들 그리고 죽은 이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영화의 매체성과 관련된 자기반영성(Self-Reflexivity)으로 도드라지게 의미화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영화의 방향성 때문이다. 영화는 그보다 PMS(월경전증후군)를 앓는 후지사와(카미시라이시 모네)와 공황장애를 앓는 야마조에(마츠무라 호쿠토) 두 주인공이, 현실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관대하고 선량한 작은 기업 공동체에서, 서로의 유사함을 통해 결핍과 상처를 극복하는 이야기에 담담히 집중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출처: 네이버 영화

무난하고 담담한 영화의 이러한 특성은 지루함이나 식상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우주라는 영화의 핵심적인 소재를 지구 밖을 벗어난 거대하고 아득한 무언가가 아닌 일상의 공간 또한 우주의 일부임을 자연스럽게 상기시키는 방법이자 태도로써 작동한다. 그러기 위해 인간의 보편적 악의가 멸균되어 보이는 <새벽의 모든>은 부정적인 삶의 모습만큼 낭만적이고 환영적인 삶의 모습 또한 제거한다. 예컨대 초등학생들에게 하는 강연치곤 냉정하게 들리는 “그리스 신화는 죽어서 주로 별이 되죠. 오리온자리라든가 쌍둥이자리라든가 하지만 사람은 죽어서 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사라질 뿐이죠.”라는 대사는 그러한 영화의 태도를 함축하고 있다. 이는 남녀가 유사한 상처를 계기로 친해지며 서로를 도와주는 이야기에 기대할만한 사랑의 감정을 배제하거나, 주인공에게 부여된 시련이 병이지만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것은 아니어서, 삶의 제약이 되지만, 일상을 영위하지 못할 정도는 되지 않는 시련인 점, 병과 그것을 둘러싼 문제들이 영화 속 극적 사건을 통해 치유되거나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선하고 관대한 주변 인물들로 가득한 영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도 극적인 사건 없이 일터와 집을 오가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태도를 생각한다면 현실적인 이야기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새벽의 모든>에서 씬은 거의 풀 쇼트로 시작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컷 분할만을 사용하며 진행된다. 클로즈업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 미디움 이상의 넓은 쇼트 사이즈를 사용하며 바스트 사이즈의 쇼트도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창이나 문과 같은 프레임을 걸고 시작하여 그 상태로 대사가 꽤 길게 진행되는 연출도 반복해서 등장하고, 거리를 걷는 두 주인공을 비출 때는 두 사람 간에 대사가 있음에도 롱 쇼트 몇 개만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절한 거리감, 너무 길게 쇼트를 지속시키지 않으면서 딱 필요한 만큼의 컷 분할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인물과 이야기, 삶을 바라보는 적절한 거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출처: 네이버 영화

즉 <새벽의 모든>의 담담한 연출과 화법의 핵심은 바로 이러한 균형감에 있다. 현실에 없을 것 같은 공동체를 배경으로 하면서 극적이지 않은 일상과 노동, 병의 치료와 관리를 그리는 묘한 양면성이 있고, 고전적 쇼트 구성 안에서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를 유지하며 인물들에게 온전히 이입하지도 거리를 두지도 않는 절묘한 위치에 서서 매 쇼트를 아름답게 담아내는 우아함이 있다. 또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킬 정도의 극적임은 없지만, 극적 구조에 따라 두 주인공이 부딪히고 소통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며 자신을 변화시키는 고전적 결말의 따뜻함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물들의 모습과 삶의 메타포로서 우주를 낭만적인 대상으로 그리거나 반대로 거대한 우주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의 과학적 진실에 기반을 두어 우리 삶에 관해 담담히 이야기한다. “지금, 여기에만 있는 어둠과 빛, 모든 것은 계속 변한다. 하나의 과학적 진실, 기쁨으로 가득한 날도 슬픔에 잠긴 날도 지구가 움직이는 한 반드시 끝난다. 그리고 새로운 새벽이 찾아오는 것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출처: 네이버 영화

훌륭하고 아름다운 이 플라네타륨 시퀀스 속 ‘밤에 관한 메모’ 내래이션 장면의 감동은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고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는 진부한 위로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작은 일상적 세계 안에서 무한한 우주를 바라보고 천체투영기가 만든 가짜 우주를 통해 우리가 실제 우주 안에 있음을 상기하게 만드는 기묘한 인식의 확장이 주는 감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영화관과 유사한 플라네타륨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죽은 이가 남긴 메모를 통해 밤하늘을 보며 어둠 너머 무한한 세상을 상상하게 만드는 행위와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 자신의 유사성을 이어 스크린 너머의 무한한 잠재성을 감각하게 한다. 물론, 글 처음에 언급한 대로, 도드라지게 의미화하지 않고 삶에 관한 진부한 위로와 고전적 이야기의 틀 안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그렇게 해낸다. 


 

글·정우성
2021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현재 예술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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