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의 거센 바람에 맞서야 할 K-민주주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월호 서평

극우의 바람이 거세다. 4년 만에 되돌아온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0일 정권을 이양받자마자 불법이민자 체포, 관세장벽, 세계보건기구(WHO) 및 파리기후협정 탈퇴 등을 천명하고, 한국과 대만, 유럽연합(EU)에 국방비 증액과 미국산 무기 구입을 종용한다. 공화당 출신이지만, 과거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단골로 등장했던 민주주의, 인권, 자유 같은 가치지향적 수사(修辭)는 찾아보기 힘들다. 트럼프의 강펀치에 ‘극우’ 민족주의자로 알려진 ‘강한 남자’ 중국의 시진핑과 러시아의 푸틴이 오히려 유약해 보일 정도다. 자유, 평등, 박애 등 인권을 위해 거대한 혁명의 서사를 써 내려갔던 프랑스도 정권 유지를 위해 약자에 대한 톨레랑스(관대)나 솔리다리테(연대)의 가치를 내던지고, 동독 공산주의를 흡수한 통일 독일의 젊은이들은 히틀러 나치를 동경하는 등 유럽 곳곳에 극우의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대한민국도 동학혁명과 3‧1운동, 80년대 민주화운동, 촛불혁명 등 수많은 피와 눈물로 일궈냈던 민주주의가 거센 극우의 바람에 위태위태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디플로)> 한국어판 2월호의 포커스 코너에서는 마이클 클레어가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의 실체를 분석하고, 낸시 프레이저가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반민주적인가?’라는 글을 통해 지구촌 극우의 파행을 진단한다. 르디플로의 동아시아 담당 르노 랑베르 기자가 ‘겉치례가 벗겨진 한국의 민주주의’라는 글을 통해 “비상 계엄령과 이걸 지지하는 극우의 준동은 한국 민주주의 허약함을 드러낸 것”이라고 진단한 글은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지구촌 기사’로는 극우에 구걸하는 프랑스 대통령, 극우에 현혹당하는 독일 청년들, 중남미와 유럽 간의 위험한 자유무역협정(FTA), 아프리카에서 무너지는 프랑스의 영향력, 시리아 독재 정권 후의 앞길, 케냐에 주둔한 영국군의 식민잔재 등이 게재된다. 르디플로가 매달 기록하는 역사적 사건으로는 ‘70년간 지속된 알제리 동족상잔의 그늘’과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학살사건의 교훈’이 준비된다.
트럼프가 공식 업무를 수행하기 직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휴전을 맺자마자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군사작전을 벌여, 팔레스타인 수십 명을 살상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이스라엘의 범죄를 고발해온 르디플로는 팔레스타인 수감 여성들에 대한 잔혹행위, 시리아 독재종식후 초조해진 이스라엘의 위협행위 등을 폭로한다.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우리에게 불어닥친 거센 미국의 외압에 대해, 국제문제의 독보적인 전문가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는 인터뷰를 통해 “단순한 충성심만으로 트럼프 2.0의 저주를 풀수 없다”며 “미국과 미군 없는 한반도를 가정한 이탈전략도 고민해볼 때”라고 지적하면서, 성조기와 태극기를 휘날리는 숭미극우세력에게 깜짝 놀랄만한 비전을 제시했다.
탄핵 시위와 관련, 시인 김혜영은 ‘눈사람이 된 미래의 포스트모던 걸’을, 구정은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쓰는 젊은 여성들의 키세스 시위’를 평가했고, 시인 박노해는 ‘그가 다시 돌아오면’이라는 시를 통해 “친일과 독재, 내란의 주범들이 돌아올 수 없도록 빛으로 끌어내 뽑아내야한다”고 강조한다.
돌연한 계엄령과 극우의 준동 속에 돌발적으로 발생한 항공사고로 인해 승객과 승무원 179명이 사망한 것과 관련해, 이봉수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원장은 “사고의 되풀이를 막기위해선 정치적 논리와 규제 완화의 신화에서 벗어냐야 한다”며, “습지는 원래 인간 아닌 새들의 고향인 만큼, 철새는 죄가 없다”고 지적한다.
신자유주의적인 규제 완화 논리에 빠진 언론과 정치권의 반성이 촉구되지만, 개혁과 혁신의 미명 아래 규제철폐와 완화는 꼬리를 잇는다. 어쩌면 규칙과 질서를 깡그리 무시하는 계엄 세력과 극우의 준동, 원칙 없는 규제 완화는 K-민주주의가 걷어내야 할 겉치레일지 모른다. 부디, 르디플로 2월호와 함께 깊은 사유와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시길.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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