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고의 '미친' 영화", "역대급 '개미친' 영화"
코랄리 파르자가 각본, 연출, 공동 편집 및 공동 제작한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 2024.12.11.개봉)’의 도발적 홍보 카피다.
서브스턴스는 단순한 바디 호러의 차원을 넘어서, 가부장적 사회에서 형성된 미의 기준과 욕망의 문제를 탐구한다. 영화는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이라는 인물을 통해, 미의 규범이 어떻게 개인의 자아를 왜곡시키고, 그 왜곡된 자아가 결국 구조적 압박 속에서 파괴로 치닫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그녀가 추구하는 '더 나은 버전의 나'는 사회가 부여한 틀 안에서만 의미를 가지며, 결국 그 틀을 벗어날 수 없는 한 자아의 진정한 실현은 불가능하다. 이 영화는, 우리가 사회가 강요하는 '더 나은 나'의 이미지를 추구할 때, 그것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자기 모순적인 과정을 내포하는지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구속되지 않는 자아의 부재
“더 나은 버전의 당신을 꿈꿔본 적 있나요?
당신의 인생을 바꿔줄 신제품 ‘서브스턴스’,
‘서브스턴스’는 또 다른 당신을 만들어냅니다.
새롭고, 젊고, 더 아름답고, 더 완벽한 당신을.
단 한 가지 규칙, 당신의 시간을 공유하면 됩니다.
당신을 위한 일주일, 새로운 당신을 위한 일주일, 각각 7일간의 완벽한 밸런스”

한때 아카데미상을 받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가 50세가 되던 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에게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라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 간 엘리자베스는 젊고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로부터 ‘SUBSTANCE’ 광고 영상 USB를 건네받는다. 집으로 돌아온 엘리자베스가 광고 영상을 보고 고민 끝에 전화로 약을 주문한다. 주문 후 그가 비대면으로 픽업한 혈청 주사제 ‘서브스턴스’ 패키지는 활성제(Activator), 안정제 추출 도구, 일주일 치 영양분 팩, 교체 키트로 구성돼 있다.

엘리자베스가 활성제를 주사기에 넣어 자기 몸에 주사하자 혼수상태에 빠지며 세포 분열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본체인 엘리자베스(the matrix)의 척추 부위가 갈라지며 엘리자베스의 육체보다 더 젊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또 다른 나(another me)’가 나온다. 그 개체는 본체의 척추에서 뽑은 골수(안정제)를 정량으로 7일간 매일 맞아야 신체가 안정되고 동시에 혼수상태가 되는 본체는 7일간 매일 정량의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7일이 지나면 두 개체가 서로 교체(Switch)되어야 한다. 두 개체는 외모도 나이도 완전히 다른 존재처럼 살 수 있지만 동시에 깨어 있을 수는 없고 둘 중 누구라도 규칙을 어길 경우 양쪽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연 7일마다 교체라는 균형, 정량의 안정제와 영양분 제공이라는 규칙을 어기지 않고 엘리자베스와 수는 안정적을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카프카적 상상력의 역전: <변신>에서 <서브스턴스>로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는 갑작스레 벌레로 변신하면서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체험한다. 카프카의 상상력 속에서 벌레는 인간성을 탈각한 존재, 소외된 자로서, 외형의 변화가 결국 인간 내면의 파멸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그레고르는 벌레라는 괴물로서, 그의 인간성은 사회적, 가족적 맥락에서 차별받고 결국 버려지게 된다.
반면, 서브스턴스에서는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더 나은 나', 즉 젊고 아름다운 자신을 추구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다른 존재로 분리하는 방식으로 변형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 변화는 단순히 육체적 변형에 그치지 않고, 엘리자베스와 '수(마거릿 퀄리)'라는 또 다른 자아 간의 분열을 통해 더 복잡한 인간 존재의 문제를 제기한다. 엘리자베스는 새로운 자아인 수의 젊음과 미를 통해 세상과 관계를 재구성하려 하지만, 결국 그 과정을 통해 자아의 분열과 파괴를 경험한다. 이 영화는 카프카의 변신에서 벌어졌던 상상력의 역전, 즉 '소외된 존재'에서 '구속되지 않는 존재'로의 변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레고르의 변신이 그의 사회적 위치와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엘리자베스의 변신은 그 욕망이 만들어낸 자기 파괴적 질주를 드러낸다. 전자는 정적이고 후자는 동적이다. 괴물화라는 본질은 동일하다.

젊게 다시 태어난 그녀는 ‘수(Sue)’로 자신을 소개하며 세상에 나서고, 엘리자베스 스파클(Elisabeth Sparkle)이 진행했한 쇼의 호스트에 성공적으로 데뷔하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쇼의 슬로건도 이전에 “Sparkle up your life”에서 “Pump it up”으로 바뀌었다.
삶을 이어가는 동안 젊고 아름다운 수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연예계 활동을 이어가는 반면 엘리자베스는 광고판 속의 젊고 아름다운 수의 모습과 거울 속 늙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며 좌절한다. 계속해서 삶을 이어가는 동안 엘리자베스와 수는 서로를 “그 여자”와 “걔”로 부르며 분열하며 갈등하지만 서브스턴스 고객센터에서는 “두 사람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고 강조한다. 활기차고 화려한 생활에 심취한 수가 본체인 엘리자베스로 교체되기를 미루면서 둘 간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수가 교체 규칙을 어기는 기간만큼 엘리자베스의 신체는 급격한 노화로 그 대가를 치루게 된다.
수가 잊고 있던 “너희는 하나다.”라는 본질에 관한 메시지. 한쪽이 파괴되면 다른 한쪽도 파괴될 수 있다.

욕망: 가부장적 사회에서 구조화한 욕망의 강제
둘은 하나이지만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의 젊음과 미를 향한 욕망은 결국 본체 엘리자베스의 욕망이다. 그녀가 추구하는 미는 개별적이고 주체적인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강요된 기준, 사회적 구조에 의해 만들어지고 강요된 욕망이다. 즉, 그녀의 욕망은 자기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제시한 미적 규범에 맞추려는 노력으로, 결국 자기 파괴적인 망상에 빠져든다.
엘리자베스가 추구하는 미와 완벽함은 개인적인 선택이라기 보다는 시대적, 사회적 기준으로 규정된 가치다. 르네상스 이후 각성한 인간의 주체적 욕망과는 다르다. 르네상스적 인간은 자기 실현을 추구하며 자아의 확장을 자기 중심 하에서 욕망하였던 반면, 서브스턴스에서의 욕망은 그저 주어진 틀 안에서 피동적인 순응으로만 의미를 가진다. 이 욕망은 개인을 초월할 수 없으며, 사회와 구조에 포획된 결과로 나타난다. 구조화한 채 개인에 씌워진 욕망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는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외모와 미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규정한 규범과 얽히는 구조적 문제이다. 미는 여성에게 부여된 특성으로, 이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사회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여겨지며, 여성이 끊임없이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기 위한 강박적 추구로 이어진다. 엘리자베스의 변형은 이와 같은 사회적 압박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며, 결국 자아와 신체의 왜곡된 인식을 초래한다. 영화에서 그녀는 젊고 아름다운 '수'라는 존재를 통해 미의 기준을 충족하지만, 그 대가는 자아의 파괴와 분열이다.
미적 규범은 여성이 신체 이미지에 대해 불만족을 느끼게 하고, 이는 자존감 저하, 우울증, 불안 등을 초래한다. 특히, 매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더욱 강화하며, '이상적인' 미를 추구하는 욕망을 부추긴다.

미국 심리학회(APA)에 의한 2017년 연구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약 80%가 자신의 신체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사회적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압박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들 중 30%는 자신을 ‘비만’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40%는 자신의 몸을 과체중으로 여긴다.
성형수술 수요도 신체 이미지 불만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2019년 미국성형외과학회(ASPS)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약 170만 건의 성형수술이 이루어졌으며, 그 중 약 90%가 미적 목적으로 이루어진 수술이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적 기준에 맞추려는 욕구가 성형수술을 촉발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에서도 신체 이미지에 대한 불만이 심각한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 중 약 70%가 자신의 몸매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외모나 신체에 불안감이 자주 나타난다고 보고되었다. 이들은 미디어와 사회적 기대에 따라 외모가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욕망의 끝없는 질주와 구조의 덫
원래 하나인 엘리자베스와 수의 미를 향한 욕망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서로를 적으로 여기고 비난하고, 경쟁하고 공격한다. 둘은 갈등의 끝에 완전히 다른 개체로 분열하고 한쪽이 다른 개체를 죽이게 된다. 남은 개체의 ‘더 나은 나’를 향한 욕망의 질주는 멈춰지지 않은 채 원칙을 깨고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던 ‘ACTIVATOR’를 다시 사용한다. 그 결과로 ‘몬스터-엘리자-수’라는 괴물로 변태한다.
젊은 여성과 늙은 여성의 신체가 뒤섞여 한 덩어리 괴물로 표현된 최종 변태의 모습은 단순한 신체적 파괴를 넘어, 사회와 구조가 강요한 ‘더 나은 나’의 ‘추함’을 표현한다. 추하고 괴기한 모습을 하고서도 귀걸이를 달고 립스틱을 바르며 드레스를 입고 새해전야 기념 무대를 향한다. 그의 마지막 무대.

엘리자베스의 맹목적이고 끝없는 미의 욕망에 대한 질주는 자아의 실현을 넘어서, 구조적 욕망에 의해 형성된 덫에 갇혀버린 결과이다. '서브스턴스'가 약속하는 '더 나은 나'는 결코 진정한 자아를 회복하거나 성취할 수 없으며, 오히려 개인을 더욱 깊은 자기 파괴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다.
Substance는 라틴어 substantia에서 유래했다. Substantia는 ‘존재’ 혹은 ‘본질’을 뜻하고 이는 ‘sub-(아래에)’와 ‘stare(서다)’로 나뉜다. Substance는 물질적 실체뿐 아니라 비유적으로 중요한 핵심이나 본질을 의미한다. 그 아래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일까. 영화에서는 피부 아래에서 찢고 나오는 존재이다.
‘더 나은 버전의 나’를 만들어준다는 서브스턴스와 엘리자베스와의 거래는 파우스트가 지식의 무기력함에 절망하여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맡기고 쾌락을 추구하는 계약과 닮았다.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에 자신의 본질(Substance)을 팔아 왜곡된 자아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왜곡된 자아는 사회가 부여한 틀 안에서만 의미를 가지며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자아의 진정한 실현은 불가능하다.
파우스트는 개인의 내면적 성장과 절망의 심연을 극복하는 과정의 결과로 구원을 받는다. 반면 엘리자베스는 끝내 구원받지 못하고 자기 파괴에 이른다. 구조화의 덫에 걸린 개인은 구원을 모색할 수밖에 없지만 결코 성취하거나 도달할 수 없다. 구조의 인식과 자아의 성찰이란 고전적이고 어려운 과정이 주는 답에 눈을 돌리지 못한다.
바디 호러- 내면화한 폭력을 직면하고 해소하는 방법
파르자 감독은 여성으로서 40대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존재와 외모에 관한 부정적인 생각에 직면하던 시기에 이 영화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바디 호러 장르를 "표현의 무기"로 활용하여 여성의 신체와 노화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연관된 내면화한 폭력을 직면하고 해소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주인공을 여성 배우로 선택한 것은 사회적, 구조적 압박에 의해 형성되고 왜곡되는 개인의 욕망과 자존감 유지의 어려움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5년 전 식욕을 억제하고 체중을 줄이는 의료 제품, 다이어트 대체제 등 여성의 신체와 노화에 대한 사회적 압박에서 영감을 받아, 상세한 묘사와 최소한의 대사로 2년에 걸쳐 각본을 완성했다. 146쪽의 각본 중 대사는 단 29쪽이었다.

‘가장 나은 나’의 집합체 ‘괴물’은 엘리자베스의 얼굴 사진을 붙인 채 무대에 올라 마이크에 대고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전히 나에요"라고 외친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 집합체를 엘리자베스도 수도 아닌 ‘괴물’로 여기고 야유하고 공격한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몬스터-엘리자-수’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신체부위가 떨어지고 공격을 받은 상처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온다. 엄청난 양의 붉은 피가 무대 위와 밖의 모든 사람들을 적신다. 몇 분 동안 계속된 강렬한 피와 음악의 향연이 스크린 밖의 관객들까지 다 적실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몬스터-엘리자-수에서 엘리자베스가 또 다시 분열한다. 젊은 나-늙은 나-괴물의 합체에서 다시 떨어져 나온 내장 형태의 엘리자베스는 그의 이름이 새겨진 할리우드 거리 바닥의 스타(Star) 표식에 도달하지만 결국 청소차에 의해 씻겨져 나가는 한낱 핏덩어리로 전락한다. 엘리자베스가 끝내 구원받지 못한 것은 끊임없이 더 나은 자신을 추구했지만, 그 추구가 자아의 진정한 실현에서 출발하지 않고 자신의 부정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구원은 불가능했다.
데미 무어가 영화 ‘서브스턴스’로 2025년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이어진 수상소감에서 ‘서브스턴스’의 메시지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전하는 바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스스로 충분히 똑똑하지 않다고, 충분히 예쁘지 않다고, 충분히 날씬하지 않다고,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다고, 그냥 다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죠. 그런 순간에 한 여성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앞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잣대를 내려놓는다면 당신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거예요.”
*사진 출처 : 네이버영화 - 서브스턴스
글‧이윤진
문화평론가. ESG연구소 대표 겸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ESG연구자 겸 운동가, ESG 모든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하이브리드형 연구자 겸 운동가가 되고 싶어 계속해서 공부하고 다양한 경로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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