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파도에 휩싸인다. 무대 위의 김다미가 연주한 바이올린 선율에 눈을 감으면 폭풍 같은 선율의 울림에 가슴 졸이다가, 문득 눈을 뜨면 그녀의 우아한 걸음걸이, 강렬하며 부드러운 시선, 활을 긋는 팔의 리듬감에 탄복을 하게 된다. 현존하는 뮤즈가 있다면 그녀가 아닐까?

그녀는 연주 때마다 공연장에 영감과 감동을 불어넣어 관객들의 환호를 받는다. 한국 클래식계에서 그녀만큼 탄탄한 팬층을 보유한 음악가는 드물다. 뛰어난 연주 실력만큼이나 화려한 스펙의 소유자로서 그녀에겐 ‘최고’의 수식어가 뒤따른다.
김다미는 22살인 2010년 이탈리아의 저명한 국제 음악콩쿠르인 프레미오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오른 뒤, 2012년 독일 하노버 요아힘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일본 나고야 무네츠구 국제콩쿠르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콩쿠르를 석권하는 등 치열한 20대를 보냈다. 미국 커티스 음악원, 보스턴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 뉴욕 주립대 등 북미와 유럽의 명문 음악대학에서 아론 로잔드, 미리암 프리드, 미하엘라 미틴을 사사한 뒤 2020년부터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되어 그녀의 음악성을 더욱 깊게 심화하고 있다. 김다미의 연주에는 부드러움과 따스함, 날카로움과 격렬함이 조화를 이루며, 관중의 맥박과 호흡을 자유자재로 뒤흔든다.
연주와 강의로 늘 바쁜 김다미를 그녀의 단골 책방으로 불러내 와인잔을 사이에 두고, 무대를 지배하던 카리스마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보았다. 그녀가 음악에 대한 열정과 함께, 연습과 공연 뒤 와인 한 잔의 쉼을 얘기할 땐 특유의 솔직함과 소탈함이 느껴졌다

-2학기가 시작되었네요. 무더운 여름 어떻게 보내셨어요?
“늘 그렇듯이 독주회와 실내악 연주회, 국내외 콩쿠르대회 심사, 학생들 지도 등으로 바빴어요. 계속되는 일정 탓에 무더운 날씨를 별로 느낄 새가 없었네요.”
-7세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진부할 수 있는 질문이겠지만,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5살 때 바이올린을 만졌는데, 어머니 손을 잡고 찾아간 집 주변의 학원에서였어요. 학원의 구조와, 바이올린을 처음 잡아본 그 순간이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난생처음 보고 느껴보는 감각이라 살짝 당황했었던 기억도 나고요. 몇 개월간 다녔던 그 학원에서 첫 단체연주도 했었는데, 그 무대에서 어깨 받침이 빠졌지만 침착하게 그 자리에 앉아서 다시 끼우고 연주를 시작했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시더군요.”
-바이올린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바이올린을 연주할까요?
“일단 현악기 중에서는 악기가 가장 작고 저렴하기 때문에 취미생이나 어린 친구들이 시작하기에 문턱이 낮습니다. 물론 바이올린을 시작하고 나서 큰 인내심을 오랜 시간 동안 가져야만 좋은 소리를 낼 수 있고, 또 실력 향상을 경험할 수 있는데요. 바이올린만이 갖고 있는 매력, 특히 솔리스트적이고 다른 악기들을 항상 리드하는 주도적이고 화려해 보이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그간 수많은 연주를 해오셨는데, ‘최애’ 연주곡은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바흐, 베토벤, 부르흐, 멘델스존, 브람스, 슈만 등 독일 음악을 선호하고 저의 음색이 그 음악에 최적화되어있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요즘은 다양한 색채를 시도할 수 있는 라벨, 쇼송, 포레 등의 프랑스 음악이나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 현대음악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연주회뿐 아니라 국제콩쿠르 대회 심사위원으로도 많이 활동하시는데, 행사가 끝나면 대개 뒤풀이로 와인을 드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즐겨 찾는 와인이 있을까요?
“보통 공연 뒤풀이에는 샴페인이나 로제, 화이트 와인이 많이 나오는 듯싶습니다. 저는 식전 음식이 무엇이 나왔는지에 따라 상황이 다르지만 당도가 아주 높지 않은 소비뇽 블랑이나 피노 블랑을 선호하는데, 당도가 있게 디저트로 화이트 와인을 마실 때는 리슬링으로 즐겨 마십니다. 레드 와인의 경우에는 피노 누아랑 쉬라즈를 좋아하는데요, 바디감이랑 탄닌이 많이 무겁지 않은 와인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선생님에게 와인은 어떤 의미일까요?
“와인은 저에게 있어서 여행, 특히 유럽을 여행할 때 그 지역의 특색을 더욱 느낄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은 연주 일정 때문에 와인으로 유명한 알자스 지방에서 며칠씩 묵고 있는데요. 지역마다 달라지는 와인의 맛과 특색이 항상 흥미로운 자극을 줍니다.”
-제가 선생님의 공연을 지방에서 좀 본 것 같습니다. 전주 비바체 실내악 공연과 DMZ 평화음악회 등 나름 의미 깊은 지역 행사에도 자주 참여하시는 게 보기 좋았습니다. 엘리트적인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로 이해되었습니다.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분으로서, 음악의 사회적 기여는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음악의 사회적 대중화는 늘 제가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가급적 달려가려 합니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음악, 예술, 문화의 분야의 예산이 가장 먼저 없어지는 부분은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음악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생각했을 때 의식주처럼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요건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람과 동물을 분간할 수 있는 것은 음악과 예술을 즐기는 감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특히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세계 공통의 만국어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음악과 늘 함께한다면 서로 간의 이해와 평화를 맞이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 유튜브에서 김다미 님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서 와인을 마셨습니다. 바이올린의 선율이 부드럽게 흘러나오다가 어느 순간에 강렬하고 가파르게 오르고, 그게 폭포수처럼 퍼지다가 넓은 호수가 되어 잔잔하고, 드넓은 바다의 출렁거림 속에 폭풍을 일으키다가 일순 고요해지고… 부드럽고 힘찬 연주였습니다. 음악을 듣다 레드 와인 반병이나 비웠어요. 바이올린 음과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와인별로 바이올린곡을 추천한다면요?
“정말 좋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레드와인은 진하고 굵은 음색이 돋보일 수 있는 독일의 낭만 작곡가들의 곡이 어울릴 듯싶습니다. 브루흐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또는 소나타, 아니면 바로크로 넘어가면 바흐의 샤콘느도 레드와인과 어울릴 것 같네요. 화이트 와인 같은 경우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곡들도 어울릴 것 같고요. 특히 화이트의 깊이감은 와인들마다 가지각색이듯, 프랑스 곡들도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한 범위의 분위기가 존재합니다. 드뷔시나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또는 쇼송의 곡들도 좋을 것 같아요. 샴페인 같은 경우는 톡톡 튀고 즉흥의 느낌이 중요하면서도 한순간에 관객의 마음을 빠르게 사로잡을 수 있는 파가니니 카프리스가 어떨까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책방의 아늑한 공간으로 자리를 옮겨 바이올리스트가 프랑스 화이트 와인 구스타브 로렌츠 게뷔르츠트라미너의 뚜껑을 땄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손에 들린 맑고 투명한 슈피겔라우 글라스안의 황금빛 와인이 그녀의 화사한 노란 옷차림과 잘 어울려 보였다. 와인을 살짝 스웰링한 그녀는 한 모금을 깊이 음미하며 말했다.
“알자스산 리슬링이군요. 목 넘김이 부드러워 몇 잔씩 식 마시게 되는 와인이에요. 연주하러 알자스 지방에 가면 이 와인을 찾곤 하죠. 장미 꽃잎이나 살구, 파인애플, 허브향 같은 내음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오크 숙성을 하지 않아, 포도의 신선함이 살아 있는 것 같아요. 리슬링 와인을 마실 땐 생선류가 적절히 페어링되겠지만, 저는 가볍게 과자류와 함께 마시기도 해요.”

-후학들을 위한 교육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로 어떻게 하나요?
“저의 학생들은 다 대학생들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제 학생이지만 모두가 성인인 만큼 최대한 성인으로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악기의 연주, 음악적인 부분, 사회적으로 필요한 인성과 예의 등 아직 많이 사회를 겪어보지 못해서 조금 미숙한 부분들을 최대한 빨리 채워주면서 직접 부딪혔을 때 시행착오를 덜어주려고 많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연주계획이 있을까요? 저희가 김다미 바이올리니스트를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올해 하반기는 다양한 협주곡들과 실내악으로 찾아뵐 예정입니다. 특히 2025년 6월에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예정하고 있는데요, 마침 프랑스의 작곡가들 곡으로 채워질 예정입니다. 제가 와인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 와인을 좋아하는데요, 예전에 독일 작곡가를 많이 선호했었는데, 요즘은 프랑스의 작곡가들의 매력에 푹 빠지고 있어서 새롭게 기획을 해보았으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글·성일권
사진·이생
장소협찬·최인아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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