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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진의 시네마 크리티크] 왜 불문율인가?
[김윤진의 시네마 크리티크] 왜 불문율인가?
  • 김윤진(영화평론가)
  • 승인 2025.04.28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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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영화 '할로윈'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1. 영화 '할로윈'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지난 글에서 살펴보았듯, 오랜 기간 공포 영화는 신체의 훼손과 변형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20세기 후반에 미국을 중심으로 슬래셔 영화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면, 21세기 초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극단주의 영화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론가 제임스 퀀트는 이를 ‘뉴 프렌치 익스트리미티’라고 명명했는데, 이 개념은 다소 논쟁적임에도 불구하고 이후 여러 후속 논의로 이어지며 관련 담론을 확산했다. 유럽발 극단주의 영화가 노골적인 묘사를 통해서 관객에게 충격을 주며 대중적으로 거부되는 경향이 있었다면, 이와 달리 미국발 슬래셔 영화는 전형적인 ‘오락’ 영화로서 기능하는 모양새였다. 존 카펜터의 <할로윈>(1978)에는 부모님이 외출한 주말 저녁, 남매가 ‘함께’ 팝콘을 먹으며 불 꺼진 집에서 비디오로 공포 영화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당시 슬래셔 영화를 즐기던 방식을 적절하게 나타내고 있다. (주로 ‘10대 소녀를 살해하는 장면’이라는 특징을 공유하는) 슬래셔 영화는 무엇보다 오락적인 것으로서 당대의 관객에게 널리 수용되었으며, 이러한 영화들이 자아내는 쾌감은 전형적인 공식을 따르는 데에서 기인한다. 사건은 정확하게 있어야 할 ‘때’와 ‘장소’에서 발생했고, 따라서─<할로윈>에서 영화 속 결정적인 장면에서 비명을 지르고자 기다리던 이들의 모습처럼─관객의 반응은 이미 준비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슬래셔 영화는 관객에게 정확히 그들이 원하던 순간을 제공함으로써 관객의 기대에 부응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1)

 반면, 유럽의 극단주의 영화들은 오락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차라리 그것은 현실 초월적이라는 점에서 종교적이거나(2) 극단적으로 현실의 이면을 들춰낸다는 점에서 현실 비판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영화는 누구와 ‘함께’ 보는 것보다 ‘혼자’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만약 당신이 이런 영화를 친구와 함께 보게 된다면, 영화가 끝난 뒤 당신과 친구는 영화에 대해서 거의 한마디도 나누지 못하고 곧장 헤어져 집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분명히 즐거운 경험이 아닌 셈이다. 명백한 규칙에 의거한 사건의 어김없는 발발과 그로 인한 쾌락적 스릴을 담보하는 슬래셔 영화의 오락적 측면과 달리, 극단주의 영화들은 가능한 최악의 순간으로 망설임 없이 내달린다. 마치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한 이러한 영화는 따라서 관객이 영화에 기대한 감각을, 관객의 영화 보는 경험을 완전히 뒤바꾼다. 이제 관객에게 ‘영화’는 이전과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영화는 더 이상 현실과 단절된, 안전하고 합의된 일탈의 공간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한 평론가는 이러한 영화가 “현실 세계와의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인류의 가장 어두운 구석”, 즉 “현실의 본질에 직면하게” 만든다고 분석한 바 있다.(3) 

 극단주의 영화들이 성문율의 위반에 그치지 않고 불문율의 적극적인 위반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왜 불문율인가? 사회를 지탱하는 암묵적인 합의로서 불문율은 도덕, 윤리, 상식, 관행 등을 포함한다. 불문율은 말해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언어 이전에 존재하는, 또는 언어에 앞서 작동하는 것이다. ‘한 집단에서 암묵 중에 지키고 있는 약속’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의미하듯, 불문율은 외부로 드러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내부 또는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는 무엇이다. 처음에는 사회적 관계, 즉 외부에서 생겨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복되며 점차 내부화되기 때문이다. 불문율은 지켜짐으로써 유지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긴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인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물론 비난은 피할 수 없을 테다). 그에 반해 성문율은 ‘문서로 작성된 법’이라는 뜻으로, 개인의 외부에서 명시적이고 공유가능한 형태로 존재한다. 성문율을 위반할 경우엔 처벌이 수반되곤 하는데, 이러한 점에서 성문율은 (불문율과 달리) 위반함으로써 유지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종종 처벌받지 않기 위해 법을 지켜야 한다고 인식하는데, 이는 그 자체로 법이 상상적 위반을 바탕으로 존속된다는 점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그림 2. 영화 '죄 많은 소녀'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2. 영화 '죄 많은 소녀'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2. 영화 '같은 속옷을 입은 두 여자'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2. 영화 '같은 속옷을 입은 두 여자'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이러한 점에서 유럽발 극단주의 영화에서 시작되어 점차 확산한 불문율 위반의 경향은, 더 이상 내부적 차원이 어떤 개인이나 사회에게도 안전하게 확보되지 않는다는 감각을 예시한다. 즉, 모든 내부는 이미 침범되었다: 우리의 비언어적 또는 무의식적 차원마저도 외부의(또는 타인의) 침범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이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신체에 가해지는 침범만으로는, 또는 신체의 내부로서 내장 기관의 훼손과 변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종종 등장하는 밀실과 지하 또한 내부의 상상적 장소로서 설명될 수 있다). 한편, 김의석 감독의 <죄 많은 소녀>(2018)는 두 차례나 생리혈을 보여주고, 김세인 감독의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2)는 사용한 콘돔, 즉 사정한 정액이 담겨 있는 콘돔이 변기에서 역류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들은 잔혹한 묘사가 아님에도 관객의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데, 이는 어떤 암묵적인 금기를 위반한 데 따른 것이 분명하다. 상징적 차원에서 생리혈은 그 자체로 경계를 흩뜨리는 ‘부정한’ 것이자 ‘비체적’ 형상으로 여겨져 왔으며, 생명력과 연관된 것으로서 정액의 (무분별한) 사정은 에너지의 낭비이자 질서의 파괴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암시를 구체적으로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들 장면이 관객의 시선을 돌리게 하는 힘은 바로 불문율을 거스르는 데에 있다.

 하나의 시청각적 환상으로서, 영화는 오랫동안 금기의 위반을 다뤄왔다. 이는 오히려 영화의 특권 같은 것이었다. 위반은 사건을 발생시키고, 사건의 발생은 곧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르마다 그것의 암묵적인 공식이 있듯이, 영화 전반에 통용되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다수의 관객과 만나는 상업 영화의 경우에서 더욱 강조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은 변했고, 영화는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감상하는 대신 견뎌내야 하는 영화 앞에서, 관객은 이전과는 다른 역할을 요청받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1) 이러한 슬래셔 영화의 전형적인 성격은 이후 그것이 여러 차례 노골적으로 패러디 되는 근거가 되었다. 2000년에 개봉한 코미디 영화 <무서운 영화>, <나는 네가 13일 금요일 밤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등이 그 사례다.

(2)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과 <미래의 범죄들>의 마지막 장면에는 공통으로 신체와 정신을 초월한, 따라서 신조차 초월한 ‘순교자’(또는 그에 준하는)의 이미지가 제시된다.

(3) Aubrey Carr, “The New French Extremity, Explained: Why This Subgenre Is More Than Simply Horror,” COLLIDER, Aug 5, 2021, https://collider.com/new-french-extremity-explained/

 

 

글‧김윤진
시각예술 및 대중문화에 대하여 글을 쓴다. 2024년 대한민국 만화평론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2023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GRAVITY EFFECT 미술비평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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