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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호의 시네마 크리티크]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가 흔들리는 이유
[송상호의 시네마 크리티크]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가 흔들리는 이유
  • 송상호(영화평론가)
  • 승인 2025.05.14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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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마동석이 내놓은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이하 <거룩한 밤>)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분명한 건 작품 내부 요소들에만 의지해서는 결코 이 영화에 관한 온전한 논의를 펼칠 수 없다는 것. 쉽게 바꿔 말하면, 영화를 만든 이가 마동석이기 때문에 작품 역시 그를 둘러싼 맥락과 조건을 연결지어 살펴봐야 한다는 뜻이다. 역시 개봉 직후 ‘마동석 유니버스’를 언급하며 그의 자장 안에서 영화를 음미하려는 반응이 대다수다. 근데 재밌게도 <거룩한 밤>을 두고 이어지는 언론과 평단의 다양한 의견들을 보자면, 중요한 요소를 놓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바로 <거룩한 밤>이 <황야>나 <범죄도시 4> 이후에 제작된 걸로 보고, 마동석 유니버스의 한계와 방향성에 관해 논하는 리뷰나 평이 심심찮게 보인다는 것.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게 있다. <거룩한 밤>부터 <범죄도시> 2편부터 4편 그리고 <황야>는 모두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연이어 제작된 연속된 흐름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 작품들은 모두 같은 쟁점들을 공유하면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마동석 제작 프로젝트에서, 작품들 사이에서 어떤 점에서 발전했는지 따져보는 작업은 크게 의미가 없다. 물론 마동석이 대중의 피드백을 의식하고 미리 찍어뒀던 본편에 대한 보완과 수정을 거쳤을 거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거룩한 밤>의 개봉 시기와 <황야>나 <범죄도시 4> 공개 사이의 시간은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거룩한 밤>은 범죄도시 2~4편을 만들면서 여러 구상과 실험을 거듭하던 마동석이 실험 차원에서 내놓은 변주일 뿐이다. 장르 실험의 관점에서 보면, 마동석은 <미션 임파서블> 4편의 팀플레이라든가 <콘스탄틴>에서 뿜어져 나왔던 오컬트 액션 스릴러의 질감을 배합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마동석의 야심 내지는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이 영화는 특히 마동석이 구축한 캐릭터에 관한 중요한 담론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건 바로 마동석 캐릭터가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조건이 어떤가에 관한 문제다. 대중은 마동석 캐릭터를 왜 사랑해 왔는가? 마동석 유니버스가 지금까지 인기 있던 이유는 무엇인가? <거룩한 밤>을 잘 뜯어 보면,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낼 수 있다. 결국 ‘마동석의 비중’이 어느정도 차지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젠 누가 마동석을 제어할 수 있는가

우선 마동석이 구축해 온 캐릭터가 <거룩한 밤>에서는 어떤 형태로 구축됐는지 짚고 넘어가자. 이건 유효성 내지는 정체성에 관한 문제인데, 이 영화에서 유독 눈에 띄는 점은 바로 현실 논리에 갇힌 폭력으로는 마동석을 흠집낼 수 없다는 것. 악마에 빙의하거나,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개입되는 수준이 되어야만 마동석에게 고난과 역경을 선사할 수 있는 셈이다. <거룩한 밤>에서 강바우가 위기에 처하는 순간을 떠올려 보자. 그의 육체는 이미 일반인의 경지를 넘어섰고, 사실상 불멸에 가깝지만 정신의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강바우는 강한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즉 <거룩한 밤>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수많은 영화에서 조금씩 변주를 주고 변화를 주는 ‘마동석류 캐릭터’의 구축에 있어 마동석은 스스로 육체를 매개로 하는 영역에선 도저히 빈틈을 부여할 수 없었다는 걸 시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인지능력을 넘어서거나, 도저히 이성과 합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현상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마동석을 막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존재는 악마 정도는 되어야 하고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강하게 압박해야만 한다. 즉 물리적인 영역에서는 그를 제어할 방도가 없다. 관객들은 이미 마석도라는 존재에 관해 예방주사도 맞고 적응을 마쳤으며 친근하게 여기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거룩한 밤>이 관객들과 만나는 지금 이 시점은, 무적의 마동석이 한계를 절감하는 존재가 과연 우리네 현실에 있는지 없는지 따져보는 계기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거룩한 밤>의 미학은 바로 여기에 있다.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마동석의 재해석과 변주가 유효한가

그럼 이어지는 질문, 마동석은 이제 본인을 어떻게 정립할 수 있을까? 마동석을 괴롭히는 건 무엇이 될 수 있는가? 그걸 배우 스스로 제작과 캐릭터 구축에 즐기면서 반영을 하는가 안하는가, 과연 그는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는가? 여기서의 문제는 마동석이 연기하는 배역이 모두 거의 흡사한 몇 가지 이미지들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게 이웃 주민이든 동네 양아치든 깡패든 형사든 반신반인이든 뭐가 됐든 간에 똑같이 마동석이라는 점이다. 즉 길가메시든 성주신이든 강바우든 마석도든 모두 이미지가 완벽히 겹쳐보인다는 것. 그렇다면 이를 두고 꼬리를 무는 궁금한 점이 생긴다. 이럴 거였다면 굳이 마동석류 캐릭터의 끊임없는 재해석과 변주가 필요한 작업일까?

이를테면 <이터널스>의 길가메시를 떠올려 보자. 그는 인간이 아닌 신에 가까운 존재지만, 그의 전투 방식은 <범죄도시>에서 마석도가 선사했던 귀싸대기를 그대로 복제한 수준이 아니었나. 즉 길가메시가 아니라 마석도로 대체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셈이다. <거룩한 밤>의 강바우가 악마화된 강화 인간들을 복싱으로 때려잡는 모습 역시 마석도가 <범죄도시 3>에서 복싱 콤비네이션으로 빌런들을 쓸어담던 광경을 환기하고 있다. 그러니 “어차피 마동석이 마동석하는 걸 텐데, 모든 영화가 다 똑같겠지 뭐” “이것 봐, 이번에도 귀싸대기나 주먹 한 방으로 정리하잖아”와 같은 반응이 관객들 가운데 나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 안 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다.

즉 우리는 대중이 마동석 영화를 왜 좋아하는지 그 배경과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마동석은 복수의 인터뷰 등을 통해 이에 대한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대중이 기대하는 나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할 것이고, 그에 부응하는 캐릭터에 대한 호응이 이어지는 한 계속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이다. 결국 마동석은 결국 어떤 환경과 조건에 놓이든, 어떤 역할을 부여받든 똑같이 마동석이다. 이런 캐릭터 구축에 관해, 자가복제니 게으르고 안전한 선택이라느니 비판도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마동석의 일관된 전략이 수정될 기미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펀치 한 방, 귀싸대기 한 방에 상대를 제압해야 한다.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마동석표 캐릭터, 홀로 빛날 수밖에 없나

<거룩한 밤> 역시 그런 미션을 성실히 수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왜 유독 반응이 갈리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바로 마동석이 이번 영화에서 팀플레이 내지는 비중 분산 작업에 집중했다는 데에 있다. 즉 <거룩한 밤>을 두고 악평이 다수 나오는 이유는, 마동석표 캐릭터가 양날의 검이기 때문이다. 마동석은 홀로 빛나야 그 매력을 온전히 발산하고 또 관객들 역시 그에게 온전히 흡수되고 동기화될 수 있다. 하지만 <거룩한 밤>의 배역 구성은 기획 의도에서 알 수 있듯 서현과 정지소 등 여성 배역에 포커싱이 맞춰져 있고, 마동석은 서브 캐릭터로 빠져 있는 형태다. 시곗바늘을 되돌려 보자. <이터널스>에서 대중이 아쉬움을 표했던 포인트가 무엇이었나. 마동석이 너무 빨리 퇴장했기에, 강력한 존재임에도 극의 중심이 될 수 없는 구조여서가 아니었나. <이터널스>가 개봉한 지 몇 년 지났지만, 아직도 유튜브 등을 떠도는 클립 영상 댓글이나 반응을 살펴보면, “마동석의 통쾌한 귀싸대기 액션이 훨씬 더 많이 배치됐어야 했다”, “마동석을 더 오래 살려뒀어야 했다”며 한국 팬들이 우스갯소리와 함께 아우성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마동석은 자신의 셀링 포인트를 명확히 알고 있고, 대중은 그에 반응했다. 문제는 다양한 재해석과 변주를 주면서, 과소비로 지적받던 요소를 매만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반복되는 액션, 똑같은 캐릭터에 기반한 마동석 특유의 정체성을 희석하려는 그 시도들 말이다. 그런 방식은 오히려 그의 강점이 묻히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설령 팀플레이를 할지라도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톰 크루즈가 그랬듯, 그를 중심으로 팀이 돌아가야 한다. 에단 헌트는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 고층 빌딩에 매달리고, 직접 가면 쓰고 위장해 본진에 들어가 임무를 수행하고, 모래바람을 뚫고 혈혈단신으로 탈출한다. 그렇게 현장을 완벽히 접수했던 그가 팀원들의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도움을 적재적소에 받을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됐던 게 이상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마동석 스스로가 잘 알고 있듯, 대중이 그에게 기대하는 건 호쾌한 액션과 폭력의 육체와 공존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인간미에 있다. 그런 다층적인 레이어를 느끼려면 마동석 본인에게 포커싱이 되어야만 매력에 스며들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겠나. 마동석의 매력을 느껴야 하는데, 다른 배역이 우선되거나, 과도한 팀플레이에 밸런스가 분산된다면 결국 마동석이라는 매력 하나로 끌고 왔던 유니버스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마동석 본인이 해답을 찾아내야 한다. 내년에 찾아올 범죄도시 5편부터 마동석 유니버스는 다시 가동되면서 두 번째 페이즈에 돌입한다. 예전 같지 않은 극장 문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갈수록 쪼그라드는 영화판에서 우리가 떠올려야 할 건, 여전히 마동석이 주먹 하나만 믿고 혈혈단신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행보를 묵묵히 지켜보고 싶다.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글‧송상호
영화평론가, 경기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글을 쓰고 있다. 2021년 박인환상 영화평론 부문 수상. 2023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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