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영화’는 장르라기보다 내용이나 주제에 따른 편의상 분류이다. 범위를 잡기 나름이지만 생각보다 정치영화가 많다. 정치영화의 성패는 주제 의식을 예술적 완성도로 얼마나 잘 버무리느냐에 달렸다. 정치의식과 예술적 완성도가 더러 상충할 때가 있어 감독이 고심을 거듭할 가능성이 크다.
이란의 모함마드 라술로프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히잡 반대 시위를 다룬, 말하자면 본격 정치영화다. 그런 종류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감독과 스탭, 배우가 투옥될 수 있기에 영화 제작 자체가 정치투쟁으로 간주되는 정치영화 중의 정치영화이다. 히잡 반대 시위를 소재로, 테헤란의 권위주의 정권에 속한 수사판사 ‘이만’과 그의 아내, 두 딸 사이에 생긴 균열과 대치를 그린 스릴러다.
고국을 떠나는 걸 감수하고 만든 영화
라술로프 감독은 이미 체제를 비판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투옥된 전력이 있고 석방 후 감시를 받는 상황에서 새롭게 <신성한 나무의 씨앗>을 만들었다. 영화를 마무리한 라술로프 감독이 영화를 발표하고 또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망명할 수밖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칸영화제에서는 이 영화 상영을 마치고 15분가량의 기립박수를 보내 그의 용기를 격려했다. 칸영화제는 또한 이 영화를 위해 ‘심사위원 특별상’이라는 새로운 상을 만들어 수여했다.
라술로프 감독은 2010년 자파르 파나히 감독과 함께 촬영 중 체포된 것을 시작으로, <집념의 남자>(2017)와 <사탄은 없다>(2020) 등을 찍으며 반체제 활동 혐의로 여러 차례 수감되었다. 이 영화는 2022년 라술로프 감독이 감옥에 있을 때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그에게 한 고위 간부는 자신이 체제에 협력한 것 때문에 가족 관계에 큰 문제가 생겼고 자살 충동을 겪고 있다고 고백했다.
영화는 그 인물에 집중해 현재 이란의 상황을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처음 전개는 그렇게 펼쳐진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수사판사 이만(미사그 자레)에 대한 시선이 싸늘해지는 걸 관객은 느낄 수 있다. 정치영화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상황이 첨예하면 첨예할수록 모두를 온정적으로 그릴 수 없게 된다. 그럴 때 실존은 절대 본질에 우선하지 않는다.
정치 상황이 악화하고 정치적 대립이 격화하면 회색이 사라지고 흑과 백이 두드러지고 모두를 둘 중 하나로 편입한다. 그리하여 흑백 중에서 선택하게 되는 게 격변기의 현실이다. 역사에서 흑과 백 말고는 고를 게 없는 순간에 인간이 가장 고통받고 더불어 역사가 발전할 힘을 얻는다는 역설이 발현한다. 전제는 그가 역사적 인간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실을 영화가 반영하려면 대치가 격해지는 구성이 불가피하다. 더불어 이 영화에서는 영화가 그리는 역사성과 영화를 만드는 역사성이 중첩돼 역사적 인물의 고통과 역사적 발전의 전망을 동시에 흥미로운 방식으로 스크린의 안과 밖에서 표현하게 된다.
라술로프 감독은 “처음에는 ‘이만’이라는 인물을 심리적으로 이해하고 싶어서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가족의 이야기가 이란의 역사와 겹쳐진다는 걸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가족의 이야기를 이란의 역사로 보여주는 방식과 역사에서 나쁜 선택을 한 인물을 이해하는 방식 사이에 접점을 찾기가 힘들었다는 애기다. 영화는 실제로 그렇게 흘러간다. 이만은 그런 인물에서 벗어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거듭해서 나쁜 선택을 내리고 거악으로 성장한다. 파멸 말고 이만에게 가능한 결말은 없었을 터이다. 영화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압제에 맞선 이란 여성의 투쟁
2022년 9월 13일 22세 쿠르드계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부적절하게” 썼다는 이유로 이란 도덕경찰에 체포됐다. 구금 중에 마흐사가 사망했고 경찰은 심장마비라고 발표했다. 이란인 중에서 아무도 경찰의 발표를 믿지 않았다. 한국인에게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일어났을 때 당국에서 “탁하고 책상을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한 기억을 소환한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히잡 의무화 등 여성 인권 침해와 정부 폭압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여성, 생명, 자유’가 이 시위의 구호였다. 여성들이 히잡을 벗고 불태운 이 시위가 ‘지나 봉기’로 불리는 이유는 마흐사 아미니의 마흐사에 해당하는 원래 쿠르드 이름이 지나였기 때문이다. 이란 정부는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운동을 의식해 쿠르드인이라도 공식 서류에는 페르시아식 이름만 허용했다. 지나는 쿠르드어로, 삶’ ‘존재’ ‘살아 있음’ 등을 의미해 운동 명칭으로도 적절했다. ‘지나 봉기’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일어난 여성 주도 저항운동의 대표 사례로 세계사의 한 장을 적었다.
라술로프 감독은 ‘지나 봉기’ 시점에 감옥에 있었다. 그해 여름에 다시 당국에 체포돼 구금 상태였다. 그는 다른 정치범들과 함께 감옥 안에서 봉기의 추이를 주시하였고, 이란 여성들의 용기와 결단력에 감동하게 된다. 2023년 2월 석방되며 ‘이제 나는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할까’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한다.
‘지나 봉기’의 강경 진압이 한창이던 어느 날에 라술로프 감독이 들은, 앞서 언급한 독재정권 부역자의 고백이 영화의 소재로 활용됐다. 라술로프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단호하게 정치적이다. “출소 후 이 운동에 기여하고 싶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라술로프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두 딸 중 둘째 딸 사나(세타레 말레키)는 감독이 가장 공들여 구축한 캐릭터였다. 사나는 관찰자이자 목격자이며 주체적인 판단을 통해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인물로, ‘여성, 삶, 자유’ 운동을 이끌며 이란을 놀라게 한 이란의 젊은 세대 여성을 상징한다.
라술로프 감독은 시대의 변화, 세대의 변화를 영화에 담았다고 말한다. 그는 “예전 세대는 저항과 투쟁 속에서 죽음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었다. 죽음은 어떤 ‘영웅적인 결말’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그렇지 않다. 이들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삶을 위해 싸운다. 삶 그 자체를 찬미하며, 죽음을 향한 싸움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싸움에 가치를 둔다”라고 말했다.
영화의 내용은 사실상 ‘지나 봉기’ 자체이기에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이 봉기를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사나’들의 투쟁만큼이나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제작 과정은 매우 어려웠다. 배우섭외 촬영 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고 첩보작전 펼치듯 영화를 찍었다. 2024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직후, 이란 당국은 출연진과 제작진을 소환해 심문하고 출국을 금지했으며, 라술로프 감독에게 출품 철회를 압박했다. 라술로프 감독과 일부 스태프는 긴 여정을 거쳐 비밀리에 유럽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
이 영화는 ‘지나 봉기’의 기록이다. 봉기 참가자들이 핸드폰으로 촬영해 SNS 등에 올린 현장 사진이 영화에 많이 활용되었다. 봉기의 실제 사진 삽입은 중요한 사건의 기록물이자 영화의 역사성을 뚜렷하게 하는 장치라는 이중의 효과를 거둔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물론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 방법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감독은 다큐적 요소를 많이 반영하되 극영화로 구성해, ‘지나 봉기’를 보여주어 공감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해석과 전망을 제시한다.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 효용을 갖지만 다큐멘터리 이상으로 접근하려면 상징과 은유로 사건을 해석하고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극영화의 방식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극영화라고 해 비비 꼬아서 만들 이유가 없다. 캐릭터의 역할이 뚜렷하다. 가족의 화해 같은 쉽게 상상할 법한 결말은 안이하다. 이만의 몰락은 역사의 필연이기에 반드시 담아내어야 했다. 대미를 표현하며 감독이 염두에 둔 것은 악의 몰락과 선의 승리이어야 할 텐데, 그 승리가 거저 주어지는 것이어선 곤란하다. ‘사나’들의 주체성과 ‘이만’들의 자기몰락을 담아내되, ‘사나’들에게 도덕적 우월성을 잃지 않게 하는 감독의 고민이 결말에 담겼다.
사나가 총을 훔치고 사용하도록 한 설정은 역사의 진보는 거저 주어지지 않으며 주체적인 결단과 실천이 중요하다는 전언이다. 그럼에도 역사의 전환점이 된 중대한 전환은 우연의 도움을 받곤 했다. 우연은 이 영화가 말하듯 주체의 필연적 항거 몸짓에 깃든다는 얘기가 사족이 될까.
글 안치용,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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