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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의 시네마크리티크] <이 별에 필요한 Lost in Starlight> (한지원, 2025) : SF 레트로 감성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
[김경의 시네마크리티크] <이 별에 필요한 Lost in Starlight> (한지원, 2025) : SF 레트로 감성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5.06.16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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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이 별에 필요한 Lost in Starlight>  (한지원, 2025) 포스터

 

SF 레트로 감성

<이 별에 필요한 Lost in Starlight>은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성인용 SF 로맨스 애니메이션이다. SF라고 하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대개의 SF 장르가 표현하는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 등 미래 세계에 대한 상상이나 상징 보다, 현실과 현실 인식, 그리고 공감할 수 있는 레트로 감성이다. 즉, SF를 통해 은유적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는 두려운 현실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는 평범하고 따뜻한 일상이라는 점이다.

레트로 혹은 복고, 옛것에 대한 포근하고 섬세한 감성은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에서도 잘 구현되었는데, ‘디지털 2D 셀 애니메이션’은 손 그림의 아날로그 방식을 살린 디지털 작업이며, 배우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기 위해 실사 연기와 선 녹음을 전제로 작화가 이루어졌다. 사운드 편집 후 그림을 그리면 그림의 움직임과 감정선, 예컨대, 눈동자와 입술의 움직임 등까지 섬세하게 동기화되고 조절될 수 있다. 블럭 버스터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영화 음악의 음표에 따라 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여 음악과 그림이 완벽하게 동기를 이루었던 것을 비교하면 이제 더 적은 예산으로 선 녹음을 실현함으로써 높은 제작비의 벽을 디지털로 넘게 된 것은 의미가 있다.

SF의 미래와 레트로 복고는 종종 함께 결합 한다. 두 가지 모두 표면적으로는 비현실인 미래와 과거를 상징하고 압축하기 때문이다. <스타워즈>(1977)에서 중세 시대의 복장이나 검을 차용한다거나,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1940년대 누아르 분위기의 트렌치코트와 비에 젖은 후미진 거리를 보여준다거나, <스페이스 스위퍼스>(2021)에서 우주 속 중고 선박을 보여주며 주인공 태호가 우주선 ‘승리호’에서 낡은 소파, 아날로그 모니터, 손때 묻은 공구를 다루며 생계형 노동자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 별에 필요한> 역시 첨단 우주선 내부나 AI, 홀로그램 등 미래를 제시하는 시각 요소와 구식 부품과 빈티지가 넘치는 세운상가, 레코드판(LP), 구식 레코드플레이어, 제이의 통기타 등이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한다.

서정적인 통기타 연주와 음악

 

제이와 나영의 첫 만남도 이 구식 빈티지 소품들의 징검다리 역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서로에게 빠져드는 서사도 한참 돌아서 가야 했겠지만, 빈티지 소품과 감수성으로 인해 그들의 사랑은 확고하고 설명 가능해진다. 또한, 여느 할리우드 SF처럼 광채 나는 미래가 아닌, 불완전하고 빈티지한 미래는 인간의 손과 땀이 깃든 미래, 인간의 감수성은 여전히 미래에도 인생을 이끌어가는 근간이라는 것, 첨단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은 손을 쓰고, 갈등하고, 욕망하며 설레는 사랑에 빠지며 그 사랑을 통해 서로 함께 성장하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은 변치 않는다는 진정성을 보여준다.

별 하나에 사랑

레트로 감성과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이 영화의 감독은 1989년생 여성 감독, 한지원이다. 그녀는 조모가 운영하는 만화방을 자양분으로 성장했다. 데뷔작 <코피루왁>(2010)으로 서울인디애니페스트 대상 ‘인디의 별’을 수상했고 <마법이 돌아오는 날의 바다>(2022)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선댄스 영화제, 팜스프링스 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되어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차근차근 평단의 주목을 받은 그녀가 애니메이션 수요의 한계가 있는 내수시장을 벗어나서 글로벌 관객에게 ‘그녀다운’ 스타일과 감성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별에 필요한>은 애니메이션 산업적으로도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새롭고 섬세한 감성, 현실적인 젊은 층의 연애와 사랑을 묘사하며, ‘이별’과 ‘이 별(세상)’이 겹친 중의적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한지원 감독이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일상에 항존하는 ‘사랑’이다. 별을 보며 ‘지금 이곳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반추할 수 있다. 별보다 사람이 더 잘 보인다. <별 헤는 밤>의 윤동주가 갖는 자기성찰과 그리움과 순수가 이 영화에 녹아들어 있다.

나영(김태리)과 제이(홍경)의 사랑, 그리움, 그리고 성장

 

2050년에 서울에 살고 있는 청년들, 나영(김태리)과 제이(홍경)의 사랑, 그리움 그리고 순수가 성장 드라마를 보여준다.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성공한 과학자이며 주체적이고 매력적인 여성, 나영은 일찍이 화성을 탐사했던 과학자, 어머니를 여의고 어머니와 화성을 함께 그리워한다. 영화 첫 번째 씬은 나영의 어머니가 화성에 첫 번째 생명인 새싹 배양에 성공한 날로 시작한다. 나영도 어머니처럼 화성에서 식물배양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그녀가 산소 밸브를 연결하는 모습은 마치 어머니의 자궁내부에서 탯줄을 연결하는 것 같다. 그녀는 화성의 우주선과 식물 배양 실험이라는 모성과 여성성을 재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영에게 있어서 화성은 그녀의 자아를 구성하는 모태이다.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그녀는 화성을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영과 제이가 처음 만나는 장면 역시 의미심장하다. 제이와 부딪쳐서 뒤로 넘어지는 나영의 손과 그 손을 잡는 제이의 손은 이들의 만남과 사랑을 예고하고, 엄마의 부재를 극복하리라는 것을 함축한다. 그들이 손을 잡는 찰나, 어린 나영이가 엄마의 손을 놓치는 장면이 인써트 되면서 이 함축된 의미는 분명해진다. 나영과 제이의 사랑은 나영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같은 밀도라는 것. 그녀는 어머니와 탯줄처럼 연결된 ‘화성’에 연결되어 있고, 제이와 맺게 되는 인연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의미들 말이다. 그러므로, 나영의 어머니 부재와 그리움은 나영이 처하게 되는 제이와의 이별이나 그리움과 같다. 그녀가 제이를 만나 사랑하면 할수록,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모험은 예견된다. 마침내, 그녀는 화성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고, 생명을 잉태하고 구하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K 드라마 클리셰 너머

화성에서 생명 연구를 하는 우주인 나영과 무명의 뮤지션 제이의 사랑은 나영이 화성 임무를 위해 복귀하면서 위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들은 사랑을 통해 서로가 함께 성장한다. 통상의 로맨스 영화가 남성 주도적 서사라면, 이 영화의 미덕은 여성인 나영의 자아실현이 남성 제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다. 생명이 없는 화성에서 여성성과 모성성이 강한 생명 배양이라는 직업을 토대로 모녀가 하나로 묶여있다는 것도 섬세한 구성이지만, 나영은 제이의 미완성곡을 완성하도록 격려한다. 두 인물은 각각 예술과 과학이라는 상이한 좌표 위에 있지만, 둘 다 '관계'라는 좌표계로부터 이탈한 불안한 존재들이다. 이 병렬 구조는 영화 전반에 걸쳐 정교하게 유지되며, 이 둘의 사랑이 서로에게서 반향하고 성숙해질 때 각각의 좌표 내에서도 점차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된다. 결국 제이의 미완성 곡은 완성되고, 나영은 어머니의 부재를 극복하며 생명 배양에 성공하고, 지구로 귀환 한다. 일견, 이 둘의 사랑이 K 드라마의 클리셰를 넘어서지 못한 것처럼 보이긴 하나, 감성적 SF 리얼리즘과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한지원 감독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글·김 경
동국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수료 후 South Baylo University에서 한의학으로 석사, American Liberty University에서 한방정신분석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와 방송 프로듀서(PD)로 기획과 연출, 시나리오 작업을 했으며, 영화제 프로그래머 및 부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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