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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즘’의 유혹에 빠진 서구의 니힐리즘
‘나치즘’의 유혹에 빠진 서구의 니힐리즘
  • 성일권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4.02.2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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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외 전략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시급하다. 니힐리즘에 빠진 미국의 정치는 실질적인 미국 국민의 이익을 배반하면서까지 전쟁을 향한 압도적 충동과 선호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 미국이 지휘하는 서구 세계에선 어떤 (위험한) 일도 일어날 수 있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에마뉘엘 토드가 프랑스 TV 방송국 <TV5Monde>와의 인터뷰(2024년 1월 19일)에서 자신의 최근작 『서구의 패배(La défaite de l'Occident)』(Gallimard 출판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같이 미국과 서구 세계를 비판했다. 그가 지적한 미국 정치의 니힐리즘은 2차 대전 후 미국의 정치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가 지적한 독일 니힐리즘 속의 나치즘 발호를 떠올리게 한다.

 

에마뉘엘 토드의 예견 

올해 72세의 에마뉘엘 토드는 프랑스 지성사회의 존중받는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이미 25세에 쓴 첫 저서 『마지막 추락(la chute finale)』(1976)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예견한 바 있다. 그의 전망대로 1991년 (폭압적인)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됐으며, 33년이 흐른 지금, 그는 정반대로 서구(북미+유럽)의 몰락을 예견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서구의 몰락은 전적으로 알맹이 없는 ‘좀비’ 프로테스탄티즘에 기인한다. 

“2000년 이후, 미국의 프로테스탄티즘에는 윤리라는 덕목이 사라졌다. 사회에 강력한 윤리의식을 제공하던 서구의 프로테스탄티즘은 단계적으로 좀비 프로테스탄티즘으로, 2000년에 이르러서는 제로(즉, 아무 알맹이가 없는)로 진화해갔다. 종교의 이러한 몰락은 미국을 신자유주의에서 니힐리즘으로 이끌었다.” 

미국의 호전적인 네오콘들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등 지구촌 곳곳에서 정당성 없는 전쟁에 광분할 때마다 끌어다 쓰는 ‘정신 승리’ 철학은 레오 스트라우스(1899~1973)의 가르침이다.

 “민주주의가 힘이 약해 전체주의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면, 더 이상 그 가치의 실현은 불가능할 것이다.”(1)

그에 따르면 폭정이 출현한 이유는 계몽주의 시대 이후 나약해진 지식인들과 관련이 깊다. 이를테면 지식인들이 ‘역사주의’와 ‘상대주의’에 현혹되었으며, 그뿐만 아니라 달성하기 힘든 ‘절대 선(善)’을 포기하는 대신 사소하고, 즉흥적인 ‘작은 선’들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 선(善)은 ‘현실 속의 잣대’가 되어야 할 ‘절대 선’이 뒷받침되지 않아 전체주의의 폭력 앞에서 쉽게 무너져 내렸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독일 유대인 출신의 그는 나치주의자들의 만행으로 빚어진 바이마르 공화국의 퇴락을 경험하면서 헤겔이 ‘미래의 나라’라고 찬양한 미국에 건너와 시카고대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치면서 고대철학의 절대 선을 현실 속에 구현하고자 했다.

스트라우스에게 있어 니힐리즘은 기성의 가치 체계와 이에 근거를 둔 일체의 권위와 질서를 부정하는 사악한 생각이다. 나치즘과 소련 공산주의 같은 ‘전체주의 체제’가 출현했는데도 니힐리즘에 빠진 허약한 지식인들이 계몽주의 시대의 성과인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대신에 상대주의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인류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지적이다.

 

스트라우스의 철학을 훔친 미국 네오콘

스트라우스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적 지성과 유대적 신앙의 조화를 중시한 헤겔이 죽은 뒤 그의 철학에 반발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이나 키르케고르의 실존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이 무정부주의적 니힐리즘에 현혹되었다. 그 결과, 문화적으로는 재즈 같은 저질 음악이 인기를 끌고, 마약과 부패가 만연하고, 반민주적인 폭정까지도 용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네오콘들이 스트라우스의 난해한 철학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상대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스트라우스의 철학을 훔친 네오콘들은 미국이 지향해야 할 ‘본질적 자유주의’를 유럽이 강조하는 다자주의, 국제규범 등 ‘상대적 자유주의’와 대비시킨다. 세계 평화의 유지를 위해선 ‘악의 레짐들’을 실질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 힘의 사용이 그 어떤 국제기구나 국제회의체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조지 부시 2세가 규정한 악의 3대 축(북한, 이라크, 시리아), 오바마 정권이 살해한 리비아의 카다피, 조 바이든이 적대시하는 러시아, 중국, 북한, 그리고 팔레스타인 등은 힘으로 다스려야 할 타도의 대상이다.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요소는 자본주의와 사회체제를 미국과 공유하지 못하는 국가들이다.

그러나 네오콘들이 자신들의 정신적인 스승으로 삼고 있는 스트라우스는 지하에서 만족하고 있을까? 스트라우스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나치즘’의 폭력적 징후가 미국과 유럽 사회에 만연해 있고, 돈만 밝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서구사회가 자랑으로 내세운 프로테스탄티즘적 윤리를 밀어내고, 일반 대중은 부나방처럼 전쟁에 광분하는 현실에서, 어쩌면 자신의 심오한 철학의 전쟁 도구화에 분노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20여 년 전 그의 딸 제니 스트라우스는 “아버지는 학자일 뿐, 극우세력의 스승이 아니다”고 안타까워 한 바 있다.(2)

서구사회에 만연한 니힐리즘의 위험성을 경고한 토드의 주장은 스트라우스와는 결이 다르다. 스트라우스는 지식인 및 시민 사회에 만연한 니힐리즘이 독일 나치즘과 소련 전체주의의 근원이라고 지적했지만, 토드는 ‘절대 선’을 가장한 미국의 반(反) 프로테스탄티즘과 신자유주의가 니힐리즘을 부채질했고, 정당성 없는 호전적 전쟁에서 출구를 찾는다는 주장이다.
그는 스트라우스와는 달리, 러시아보다는 서구사회의 위험성을 더 경고했다.

“서구는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며, 리버럴 올리가쉬(liberal oligarchy, 자유주의적 과두정치)다. 반면에 러시아는 권위적 민주주의 사회로 진화해 왔다.”

50여 년 전 소련의 패망을 구체적으로 예언함으로써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 토드는 최근 <휘가로(Figaro)>(2024년 2월 17일)와의 인터뷰에서도 오늘날 니힐리즘으로 황폐해진 서구의 종말을 선언하고, 푸틴에 의해 ‘안정화된’ 러시아의 승리를 예언했다. 그는 또 <르몽드>(2024년 1월 20일)와의 인터뷰에서도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의 소멸이 민족 국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서구의 붕괴를 가져오지만, 러시아에서는 오히려 민족 국가가 형성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서구의 ‘루소포비아’에 의해 조종받아 분해 중”이라고도 말했다.

그의 신랄한 발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그의 발언에 언론이 앞 다퉈 주목하고, 독자들이 수많은 댓글을 보냄으로써 그를 지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자신들이 훨씬 강하다는 스스로의 착각, 환상, 거짓말로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수렁에 자국을 빠뜨렸다. 그러나 2년간 진행되어온 전쟁에서 나토는 러시아에 졌고, 유럽 경제는 혼란에 빠졌다.”

“서방 언론이 지금까지 해온 푸틴에 대한 무모한 거짓 선동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상대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그에 맞서겠다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깝다.” 

“유럽의 최강자가 된 독일이 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있고, 노르트스트림2는 그들을 연결하는 완벽한 기반이 될 수 있었다. 미국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으로서는 그것을 단절할 명분이 필요했다.”

“러시아는 2년 전 이미 튀르키예에서 평화조약에 서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보리스 존슨이 젤린스키를 선동하는 역할을 했고, 결국 전쟁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2015년 프랑스와 독일, 즉 올랑드와 메르켈이 보증인으로 나선, 2차 민스크 협약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돈바스 지역에 대한 폭격을 멈출 것, 자치 공화국으로의 이행을 도울 것을 약속한 평화조약이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조약을 이행하지 않았고, 독일과 프랑스는 보고만 있었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러시아 간의 전쟁이 아니며, 결코 그랬던 적이 없다. 우크라이나를 원조한 국가들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환상 속으로 우크라이나 국민을 밀어 넣으며 끔찍한 고통을 강요한 셈이다.”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는 ‘탈(脫) 진실’ 시대의 진실

우리 정부는 ‘우방’ 미국의 요청에 따라 북한을 상대로 군사력을 키우고, 불편한 관계의 일본과도 군사 협력을 증대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진심으로 지원하고 있다. 미국이 추가 지원을 요청하면 러시아의 반발과 항의에도 불구하고, 어떤 형태로든 지원할 태세다. 미국과 서구가 주도하는 호전적인 전쟁 외교 덕택에 무기 수출국 톱 10위(2017~2022년)에서 곧 4위에 오를 전망이다.(3) 최악의 경기침체와 수출 부진, 실업난, 의사 파업 등으로 혹독한 국란을 겪고 있는데도 거의 유일하게 활황세를 띤 곳이 방위산업이라니 놀랍고도 슬프기 짝이 없다. 선거철이 다가오며, 정치권력은 수많은 개혁 청사진을 내놓지만 유권자들의 헛헛한 냉소만 자극할 뿐이다.

이제 진실을 묻고 싶다. 미국이 지원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하마스 전쟁은 정당한 것인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는 러시아는 우리에게도 적인가? 북한은 세계 10대 무기구매국이자 세계 4대 무기 수출국인 우리가 겁을 먹어야 할 만큼 강력한가? 일본은 우리가 군사 동맹을 맺어야 할 만큼 우리에게 진심인가?

침체의 늪에 빠진 서점가에 그나마 위안의 철학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의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불교와 힌두교에 심취한 철학자의 책에는 곱씹어 봐야 할 글들이 많다. 정치권력이 거짓을 진실로 만들고, 진실을 거짓으로 둔갑시키는 ‘탈(脫) 진실’의 시대에 쇼펜하우어에게서 혜안을 구할 수 있다면, 또 그것으로 헛헛함을 채울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1) Leo Strauss, 『Spinoza’s critique of religion 스피노자 철학의 종교에 대한 비판』(1965). p.1.
(2) 이와 관련, 스트라우스의 입양 딸인 제니 스트라우스 클레이는 2003년 7월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언론은 내 아버지 스트라우스가 마치 미국의 외교정책을 조종하는 네오콘들의 배후 주모자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으나, 나는 그들에서 스트라우스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3) 필리프 레마리, ‘군수산업의 기록적인 매출 달성, 우크라이나 전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월호, 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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